<만화가의 권리찾기(22) - 저작권의 양도인가, 이용허락인가>


이영욱 변호사(법무법인 신우)




1. 들어가며

저작권에 관한 분쟁으로 흔히 문제되는 것 중 하나가 저작권의 양도인가, 아니면 단순한 이용허락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만화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만화가가 누군가로부터 대가를 받고 그림을 그려준 경우, 그림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양도한 것일까요, 아니면 일정 기간 동안 사용만을 허락해준 것일까요? 즉, 만화가가 그려준 그림에 대한 권리는 출판사로 넘어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출판사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한정된 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하고 결국 그 권리는 만화가로 다시 넘어오는 것일까요? 우리가 통상 “매절”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바로 이와 같은 저작권 양도 또는 이용허락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2. 저작권 양도와 이용허락 - 출판계약의 경우


(1) 우리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에 관한 제3자의 관여에 대해서 물권적(준물권적) 성격의 "저작재산권 양도"(저작권법 제45조)와 채권적 성격의 "저작물의 이용허락"(저작권법 제46조)로 분명히 나누고 있습니다.  


(2) 서적 출판 계약 또한 위와 유사하게, 저작재산권 양도계약(또는 그 중 일부의 권리인 복제권·배포권 양도계약)과 설정출판계약, 허락출판계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은 위의 “저작재산권 양도”에 해당하고, 허락출판계약은 “저작물의 이용허락”에 해당하며, 설정출판계약은 양자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은 저작재산권 전부를 출판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말합니다(저작권법 제45조 제1항). 위 계약에 따라 출판자는 저작물의 복제·배포권, 방송권, 전시권 등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받아 저작물을 출판하고, 저작자에게는 이제 권리가 없습니다. 

한편 허락출판계약은 저작권자가 출판자에 대하여 출판을 허락하고, 이에 대해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을 말합니다(저작권법 제45조 제2항). 여기에는 ① 출판자가 단순히 저작물을 출판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비배타적 허락출판계약’과, ② 허락을 받은 자만이 해당 저작물을 출판할 수 있고 저작권자도 동일한 내용의 허락을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없는 의무를 부담하는 ‘배타적 허락출판계약’이 있습니다. 저작자는 출판을 허락해 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자신의 저작권을 회복합니다. 


(3) 저작권 양도에 관한 판례의 태도

저작권에 관한 계약이 저작권 양도계약인지 이용허락계약인지 불분명한 경우 그 법적 성질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실제 계약을 해석함에 있어 과연 그것이 저작권 양도계약인지 이용허락계약인지는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가 많은데, 저작권 양도 또는 이용허락되었음이 외부적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경우 저작자에게 권리가 유보된 것으로 유리하게 추정함이 상당하며, 계약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구체적인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거래관행이나 당사자의 지식, 행동 등을 종합하여 해석함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하였고, 또한 판례는 “원고(극작가)들이 피고 방송사로부터 대가를 받고 그들이 저작한 극본을 피고에게 제공하였다 하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저작권자인 원고들이 피고 방송사에게 저작물인 위 극본의 이용권을 설정해 준 데 불과할 뿐, 이로써 원고들의 극본에 대한 저작권을 상실시키기로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위 극본 저작자인 원고들은 위 극본에 대한 저작권을 그대로 보유한다. ...극본공급계약에는 원고들이 피고 방송사로 하여금 그 극본을 토대로 2차적저작물인 TV드라마 녹화작품을 제작하여 TV방송을 통하여 방영하는 것(개작 및 방송)을 승낙하는 의사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이나, ... 극본을 토대로 제작된 녹화작품을 VTR 테이프로 이용하는 것까지를 승낙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3. 매절 계약의 경우


(1) 매절의 의의

‘매절’이라 함은 출판자가 저작권자에게 책 판매량과 상관없이 미리 한 번에 저작물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래계에서는 통상 출판계약시 그 대가를 인세제가 아닌 원고료 형태로 한번에 미리 지급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만약 매절계약을 ‘저작권양도계약’이라고 보면 저작권자의 권리가 크게 제한되나, 이를 ‘허락출판계약’ 또는 ‘설정출판계약’이라고 본다면 저작권자는 출판자에게 기간을 정한 준물권 설정 또는 채권적 이용허락만을 한 것이 되어 저작권자의 권리는 매우 강화됩니다. 

예컨대 ‘학습만화’의 경우 또는 어떤 책에 ‘만화 삽화’를 그리는 경우 일시불로 상당한 정도의 금액을 지급받는 경우가 있는바, 이를 ‘저작권양도계약’이라고 보면 만화가는 해당 삽화에 대한 권리를 모두 출판사에 넘기는 것이 되어 향후 만화 또는 만화가 게재된 서적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여지가 없을 것이나, 이를 ‘허락출판계약’ 내지 ‘설정출판계약’이라고 본다면 만화가는 출판자에게 일정한 기간 그 만화가 게재된 서적을 출판하도록 한 후 재차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여지가 있습니다.  


(2) 매절계약의 법적 성질

매절 계약에 대해, 출판자가 재고 등 위험부담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 대가로서 출판자에게 저작재산권 등이 양도된 것으로 보아 이를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보자는 견해가 있고, 그간 출판자측에서는 주로 이와 같은 전제에서 주장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판매부수에 따른 인세제의 경우에도 복제물이 팔리지 않는다고 저작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이상 위험부담을 저작권 양도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근거가 박약하며, 사용료의 선급은 다만 저작의욕을 부추기기 위한 인센티브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아 매절계약을 허락출판계약 내지 설정출판계약으로 보자는 견해가 있습니다.

  

(3) ‘녹정기’ 사건

우리나라 하급심 판례는 이른바 ‘녹정기’ 사건에서 “…신청인과 위 소외인 사이의 1987. 3. 31.자 계약은 저작물 이용대가를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괄지급하는 형태로서 소위 매절계약이라 할 것으로, 그 원고료로 일괄지급한 대가가 인세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등의 소명이 없는 한 이는 출판권설정계약 또는 독점적 출판계약이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위 계약이 저작권양도계약임을 전제로 하는 신청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4) ‘비록 대동아전사’ 사건(일본)

일본의 판례는 “원고의 매절이라고 하는 것에도 저작물 게재의 대가로서의 원고료의 지불의 경우도 있으므로, 매절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직접 저작권의 양도가 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원고 등에 대한 400자 원고용지 1매당의 지불금 액수 500엔이 인세 상당액을 큰 폭으로 웃도는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 등 외에는 “비록 대동아전사”의 집필자 중 1 명의 사람으로부터 인세 청구가 있던 것 외에 그 후의 “비록 대동아전사 축쇄판” 및 “대동아 전사”의 출판에 대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집필자로부터 인세 그 외의 청구가 없는 점, “비록 대동아 전사” 12 권이 다수 집필자의 작은 편을 편집한 것인 점, 기타 앞에서 인정된 각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원고 등으로부터 소외 서원에 대해 본건 각 저작물에 대해서 적어도 출판물에 대해 복제할 권리의 양도가 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5) 소결론

매절계약의 법적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우선 저작자와 출판자 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의 해석문제이고, 구체적인 경우에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출판계에서 통상 사용하는 계약이 설정출판계약 내지 허락출판계약이고, 저작권 관련 계약의 해석에서 저작권 양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에 관한 분명한 약정이 필요하고, 양도 또는 이용허락 되었음이 외부적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것은 저작자에게 그 권리가 유보된 것으로 추정하는 ‘저작자에게 유리한 추정’(Presumption for author)이 적용되어야 하는 점 등에 비추어 매절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저작권양도계약이 아닌 허락출판계약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위 판례들 또한 매절계약을 원칙적으로 허락출판계약으로 보고, 다만 인세 상당액을 훨씬 초과하는 고액의 대가가 지급된 경우에는 이를 저작권양도계약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5. 결론

그렇다면, 만약 독자 여러분이 그간 “어느 정도 대가를 받고 만화를 그려줬으니, 이제 나는 권리가 없는 것 아닌가”, 즉 “매절”이라고 해서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면, 지금에라도 그 계약에 대해 치밀하게 따져 보아 지금이라도 권리를 행사할 여지를 찾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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