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35) - 저작권의 보호기간>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만약 모차르트가(또는 그 후손이)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 저작권을 갖고 있다면? 세종대왕이(또는 그 후손이) 한글에 대해 저작권을 갖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아마 지금도 한해 수십, 수백억원의 수입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저작물의 보호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만약 우리가 그린 만화의 저작권이 우리 사후에까지 미친다면, 그리고 만화가 우리 사후에까지 사랑받는다면 아마도 우리가 그린 만화를 갖고 우리의 아들 딸들이 저작물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갖고 먹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About a boy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직업이 없는데도, 아버지가 작곡한 캐롤 곡의 저작권료로 부유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보호기간을 무한정하게 길게 인정한다면, 저작권자야 행복하겠지만 인류의 문화발전은 힘들 것입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저작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대의 업적에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작권법에서 정한 일정한 보호기간이 끝난 저작물은 다시 공유의 영역으로 돌아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저작권법에서 인정하는 보호기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 보호기간의 원칙
저작권법 제39조(보호기간의 원칙) 제1항에서는 “저작재산권은 ... 저작자의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 후 50년간 존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공동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맨 마지막으로 사망한 저작자의 사망 후 50년간 존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발생합니다. 저작재산권은 그때부터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 존속하고, 저작자가 사망한 다음에도 50년간 존속하는데, 물론 권리 행사는 저작자의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들(민법에서 정한 상속권자들)이 행사할 것입니다. 다만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공표권, 동일성유지권)에 대해서는 저작권법은 뚜렷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공동저작물의 경우는 공동저작자 중 맨 마지막으로 사망한 저작자의 사망 후 50년간 존속합니다. 외국의 경우, 유명한 저서는 학자인 아버지와 아들 의 “공저”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아버지가 단독으로 쓴 가치 높은 책을, 아들과의 공동저작물로 함으로써 아버지의 사망후 50년간이었던 저작권 보호기간이 아들의 사망후 50년간으로 늘어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3. 업무상저작물의 보호기간
저작권법 제41조(업무상저작물의 보호기간)에서는 “업무상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공표한 때부터 50년간 존속한다. 다만, 창작한 때부터 50년 이내에 공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창작한 때부터 50년간 존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업무상저작물”이란 법인·단체 그 밖의 사용자의 기획하에 법인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을 말합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31호). 즉,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회사가 만든 저작물”로서, 저작권 산업에 회사들(영화사, 방송국, 드라마제작사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요즘, 이런 업무상저작물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처럼 업무상저작물의 경우, 개인의 저작물보다 저작권의 보호기간이 짧아지기 쉽습니다(업무상저작물은 공표한 때로부터 50년, 개인의 경우 저작물을 만든 개인의 사망후 50년이므로). 따라서 회사에서 만든 저작물이라고 해도, 이를 창작한 개인의 저작물로 등록한다면 실질적으로 더 오랜 기간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과가 됩니다(실제로 미국의 “미키마우스”는 월트디즈니사의 저작물이 아니라, 월트 디즈니 본인의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4. 기타 규정들
영상저작물 및 프로그램의 저작재산권은 공표한 때부터 50년간 존속하고, 다만 창작한 때부터 50년 이내에 공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창작한 때부터 50년간 존속합니다(저작권법 제42조). 그러나 프로그램 같은 경우, 몇 년만 지나면 이미 경제적 가치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겠죠. ^^;
저작재산권의 보호기간을 계산하는 경우에는 저작자가 사망하거나 저작물을 창작 또는 공표한 다음 해부터 기산합니다(저작권법 제44조).

 

 

5.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기간과 외국의 보호기간
1998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Copyright Term Extension Act. 이를 발의한 의원 이름을 따서 “소니보노(Sonny Bono)법”이라고도 합니다)에서는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저작자의 사후 50년"에서 "저작자의 사후 70년"으로, 업무상 저작물의 경우는 “최초 발행한 해로부터 75년간 또는 창작된 해로부터 100년간 중 먼저 종료되는 기간”에서 “최초 발행한 해로부터 95년간 또는 창작된 해로부터 120년간 중 먼저 종료되는 기간”으로 연장하였습니다.
보호기간의 연장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EU), 일본의 일부 저작물에서도 이루어졌는바, 우리나라에서도 한미FTA에 따르는 저작권법 개정법이 발효되면 보호기간이 연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권의 보호기간이 저작자의 사후 70년으로 개정된다면, “잘 만든 저작물 하나로 3대(저자, 아들딸, 손자손녀)가 먹고 사는”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후에까지 보호받을 만한 가치 있는 저작물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 잠정적으로 '우리만화'에 연재중이던 '만화가의 권리찾기' 연재는 여기서 종료했습니다. ^^;

 

<만화가의 권리찾기(34) - 인터넷을 통한 권리침해에 대한 보호>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최근에 저작권법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인터넷을 통한 저작권 침해”일 것입니다. 실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전국민의 저작권자화”, “전국민의 저작권 침해자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터넷이 저작권법 질서에 미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만화의 경우를 보면, 인터넷 포탈의 블로그, 까페 등에 의한 침해, 인터넷 게시판에 의한 침해, 나아가 웹하드, P2P에 의한 침해 등 다양한 경로로 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만화가가 인터넷에서 자신의 권리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물론 개별 업로더, 다운로더에게 일일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도 명확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실은 이러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행위로 많은 이득을 얻는 것은 인터넷 사업자이기 때문에, 인터넷 사업자(저작권법상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권리침해 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통상의 방법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올해 우리 대법원은 비록 명예훼손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중요한 판례를 하나 내놓았습니다(대법원 2009. 4. 16. 선고 2008다53812 판결). 그래서 이번 회에서는 위 판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2. 사실관계
A는 2004. 4. 친구의 소개로 B를 만나 교제하다가 2005. 4.경 B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B의 어머니인 C는 A가 임신한 B를 학대하고 버리려고 한다는 이유로 A의 뺨을 때리고 A의 회사와 학교생활에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이에 A의 신고로 경찰조사를 받던 중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B는 2005. 4. 자신의 거주지에서 여러 통의 편지 형식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그러자 C는 2005. 5. 5. 인터넷 사업자인 D가 운영하는, 사망한 딸인 B의 미니홈피에 ‘지난 1년간의 일들’이라는 글을 게시하였는데, 그 내용은 B가 자살한 것은 A의 비도덕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였고, C는 위 미니홈피에 이러한 사실을 널리 퍼뜨려줄 것을 호소하였다. 

E, F, G는 각 우리나라의 포털 사이트였는데, 위 E 등의 사이트에는 관련 뉴스기사가 게재되고, 각 블로그, 카페에도 관련 게시물들이 게재되었다. D, E, F, G(이하 “D 등”이라고 함)는 각 5. 7. 내지 5. 16.경부터 위 게시물들을 삭제하거나 A의 실명을 검색어 순위에서 제외시켰다.
A는 6. 27. D 등에게 자신의 명예훼손이 우려되니, 관련 기사에 달린 A 관련 댓글 전체 삭제, 관련 추모, 안티 까페, 미니홈피, 블로그 등 A의 피해가 우려되는 커뮤니티 폐쇄, A와 관련된 검색시 나타나는 정보 등의 차단 및 삭제를 요구했으나, D 등은 그런 요구만으로는 게시물 특정을 할 수 없어 해결책 마련이 어려우니 문제되는 글을 특정하여 삭제를 요구해 달라고 답변하였다.

 

 

3. 대법원의 판결요지

[다수의견] 명예훼손적 게시물이 게시된 목적, 내용, 게시 기간과 방법, 그로 인한 피해의 정도, 게시자와 피해자의 관계, 반론 또는 삭제 요구의 유무 등 게시에 관련한 쌍방의 대응태도 등에 비추어, 인터넷 종합 정보제공 사업자가 제공하는 인터넷게시공간에 게시된 명예훼손적 게시물의 불법성이 명백하고, 위 사업자가 위와 같은 게시물로 인하여 명예를 훼손당한 피해자로부터 구체적ㆍ개별적인 게시물의 삭제 및 차단 요구를 받은 경우는 물론, 피해자로부터 직접적인 요구를 받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그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거나 그 게시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음이 외관상 명백히 드러나며, 또한 기술적, 경제적으로 그 게시물에 대한 관리ㆍ통제가 가능한 경우에는, 위 사업자에게 그 게시물을 삭제하고 향후 같은 인터넷 게시공간에 유사한 내용의 게시물이 게시되지 않도록 차단할 주의의무가 있고, 그 게시물 삭제 등의 처리를 위하여 필요한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그 처리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

[별개의견] 인터넷 종합 정보제공 사업자의 명예훼손 게시물에 대한 삭제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사업자가 피해자로부터 명예훼손의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구체적ㆍ개별적으로 특정’하여 ‘삭제하여 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나아가 그 게시물에 명예훼손의 불법성이 ‘현존’하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였으며, 그러한 삭제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이 ‘기술적ㆍ경제적으로 가능’한 경우로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대법원은 위 “다수의견”과 같은 견해를 밝히면서, D등에게 A에게 각 수백만원의 손해배상을 할 것을 명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였습니다.

 

 

4. 결론 및 판례의 검토

위 판례는 명예훼손에 관한 판례이기는 합니다만, 웹하드나 P2P 사업자의 저작권법상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동법 제102조 내지 제104조)에 의한 면책을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판례의 입장에서 보건대, 저작권 침해의 문제에도 유추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입니다.
위 판례의 어떤 입장에 따르는 경우에도, 만화가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신의 권리침해 장면을 부지런히 찾아서 증거자료로 확보해놓고, (2) 그러한 침해가 일어나는 공간을 운영하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가능한 한 많이, 자주, 자신의 권리 침해 사실을 알리고, 권리 침해를 막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이를 알리는 것은 내용증명 등 우편의 방법도 좋고, 근거가 남을 수 있는 메일 또는 다른 방법을 통한 고지도 좋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해 상태가 남아 있을 경우, 해당 자료를 또 다시 증거자료로 확보해놓는 것입니다. (4) 그럼에도 만족할만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모아놓은 자료를 근거로, 이를 직접 업로드한 사용자에 대하여 또는 인터넷 사업자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위 대법원 판례의 A씨처럼).

 

한편, 위 대법원 판례에서 두가지 입장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전자(다수의견)의 입장은 인터넷에 게시된 저작권 침해물의 불법성이 명백하고, 인터넷 사업자의 관리통제가 가능하다면, 인터넷 사업자가 권리자로부터 침해 중단 조치 요구를 받은 경우는 물론이고, 요구를 받지 않았다고 해도 게시물의 존재를 알거나 알 수 있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별개의견)은 사업자가 권리자로부터 게시물을 구체적, 개별적으로 특정해서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해당 게시물의 불법성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위 대법원 판례에 입장에 의하면 인터넷 사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권리침해 거의 전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되므로, 지나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고, 이는 또한 인터넷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유력한 학설의 비판이 있습니다.
만화가(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당연히 대법원 다수의견이 저작권자에게 유리합니다(^^;)..

 

최근 저작권법 개정에 대해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상당 부분은 오해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IT(인터넷 기술)이 매우 빨리 발달하면서, 기존 저작권법 질서에 충돌이 생기고 있는 점은 분명합니다. 만화가(저작권자) 입장에서는 인터넷이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권리에 대한 크나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바, 가만 있으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잘 챙기고, 또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33) - 상표법에 의한 캐릭터의 보호>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이번 회에서는 만화가가 그린 캐릭터의 상표등록과 관련된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는 경우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요? 그리고 조금 황당한 것 같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타인이 상표로서 등록하면 어떤 상황이 되는 걸까요?
우선 상표라는 것은 “상품을 생산·가공·증명 또는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영위하는 자가 자기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호·문자·도형·입체적 형상·색채·홀로그램·동작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 그 밖에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를 말합니다(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호). 통상 여러분이 많이 보는 “나이키”, “삼성”등의 상표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상표의 사용"이라 함은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한 것을 양도 또는 인도하거나 그 목적으로 전시·수출 또는 수입하는 행위, 상품에 관한 광고·정가표·거래서류·간판 또는 표찰에 상표를 표시하고 전시 또는 반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상표법 제2조 제1항 제6호). 예를 들어 티셔츠에 “나이키”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카메라에 “삼성”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경우를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2. 창작자가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는 경우

 

가. 상표등록의 장점
우선 창작자가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를 상표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위와 같이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지 않고도 상표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면, 상표등록은 왜 하는 걸까요? 
상표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이를 상표로서 선등록 해버리는 경우,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창작자의 직접 사용 또는 제3자를 통한 사용에 복잡한 문제가 생기고(사용권의 문제), 다른 사람이 창작자의 캐릭터를 무단으로 상품에 사용해도 이를 용이하게 금지시킬 수 없는 문제점이 있습니다(금지권의 문제).
반면,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면 등록 과정에서 국가가 이를 심사하므로 법적 문제가 없다는 개연성이 매우 높고, 타인이 창작자의 상표 사용을 막을 수도 없다는 검증도 거친 셈이니, 그 사용이 매우 안전해집니다. 또한 등록된 상표를 타인이 사용하는 경우, 상표법에 의해 간단하게 이를 민형사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나. 상표등록의 문제점

 

(1) 상표 출원 및 등록비용
상표를 등록하는 경우에는, 우선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이 된 후 이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보통 상표출원 자체가 일반인이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변리사 등 전문가를 통해서 출원을 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고, 그와 별도로 국가에 인지대, 등록료 등을 내야 하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등록료를 재차 내야 하기 때문에 뚜렷한 상표 등록의 목적이 없다면, 그 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

 

(2) 불사용취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상표를 등록한 후 사용하지 않으면 상표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관하여 상표법 제73조(상표등록의 취소심판) 제1항에서는 “①등록상표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상표등록의 취소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3. 상표권자·전용사용권자 또는 통상사용권자중 어느 누구도 정당한 이유없이 등록상표를 그 지정상품에 대하여 취소심판청구일전 계속하여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지 아니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상표가 등록된 경우에도, 등록 후 3년 이상 등록된 상표를 실제로 지정상품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3자가 해당 상표등록을 취소해달라고 특허심판원에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용할 의사도 없이 상표를 등록해서 선점할 수는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뚜렷한 목적 없이 상표를 우선 등록만 하는 경우, 곧 곤란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3. 제3자가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는 경우

 

 

가. 등록자가 해당 상표를 쓸 수 있는가.
이번에는 창작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지 않는 틈을 타서, 제3자가 이를 상표로서 등록하는 경우에, 등록자가 해당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 우리 상표법 제53조(타인의 디자인권등과의 관계)에서는 “상표권자·전용사용권자 또는 통상사용권자는 그 등록상표를 사용할 경우에 그 사용상태에 따라 그 상표등록출원일전에 출원된 타인의 특허권·실용신안권·디자인권 또는 그 상표등록출원일전에 발생한 타인의 저작권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지정상품중 저촉되는 지정상품에 대한 상표의 사용은 특허권자·실용신안권자·디자인권자 또는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지 아니하고는 그 등록상표를 사용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상표권자가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경우 그것이 상표 등록 출원일 전에 발생한 창작자의 저작권과 저촉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상표의 사용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은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므로, 등록자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는 해당 상표를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작권자(창작자)는 해당 상표의 등록 출원일 전에 그러한 저작물을 스스로 창작해서, 그 저작권이 발생하였음을 입증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나. 등록자가 창작자의 캐릭터 사용을 막을 수 있는가
창작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지 않는 틈을 타서, 등록자가 이를 등록한 다음, 거꾸로 창작자(저작권자)의 캐릭터의 상표로서의 사용을 막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시중에 있는 유명한 캐릭터를 창작자보다 먼저 등록해버린 다음, 정작 창작자가 이를 사용하려 하자 금지를 구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되겠습니다(이러한 일이 미키마우스, 키티 등 외국의 캐릭터에게 많이 일어났습니다).
상표등록은 상표를 우선 등록한 사람에게 권리가 있는 만큼, 상표의 창작자 여부와 상관 없이, 선등록한 자의 금지 청구는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 제15조는 상표법 등 다른 법률에 부정경쟁방지법과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법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다른 법률의 규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상표권의 등록이 자기의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시킬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국내에서 널리 인식되어 사용되고 있는 타인의 상표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여 일반 수요자로 하여금 타인의 상품과 혼동을 일으키게 하여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형식상 상표권을 취득하는 것이라면 그 상표의 등록출원 자체가 부정경쟁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가사 권리행사의 외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는 상표법을 악용하거나 남용한 것이 되어 상표법에 의한 적법한 권리의 행사라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법 제15조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할 것이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판시 사실에 터잡아 1982. 4. 3. 이만형의 상표등록출원 당시 원고의 이 사건 캐릭터가 상품표지로서 주지성을 획득하였고 이만형의 상표등록출원은 아직 원고의 상표등록 사실이 폭넓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기화로 널리 알려진 이 사건 캐릭터의 이미지와 고객흡인력에 무상으로 편승하여 자신의 상품판매를 촉진할 의도에서 행하여진 것이므로 피고가 사용하는 상표가 등록상표라고 하더라도 그 사용은 상표권의 남용으로서 상표권자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바, 이는 위에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고, 거기에 상표권의 남용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다4487 판결).


이러한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를 경우, 위와 같은 경우에는 (물론 모든 캐릭터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이미 상품표지로서 주지성을 획득한 캐릭터의 경우) 등록자의 등록상표에 의한 상표권 행사는 ”상표권의 남용“으로서 법원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4. 결론
캐릭터 사업을 하는 사업자의 경우에는 상표법의 강력한 법적 효력 때문에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측면이 있고, 실무상 널리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창작자 본인(만화가)이 캐릭터를 상표로서 출원, 등록한다는 것은 비용이나 절차 면에서 쉬운 일이 아니고, 출원,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일부 권리구제의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장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캐릭터를 상표로서 등록해서 보호해야 할 것이고, 다만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자신의 소중한 캐릭터는 보다 간편하고 비용이 덜 드는 “저작권 등록”으로서 권리를 보호받음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32) - “하얀나라 까만나라” 사건>

 

이영욱(변호사)


 

1. 들어가면서

이번 회에서는 만화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저작권 침해에 관하여 우리나라에 선도적 판례로서 의미가 있는 사건을 살펴봅니다.
본 사건은 검사생활을 마치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원고가 자신의 검사 및 변호사로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얀나라 까만나라”라는 소설을 집필하였는데, 피고인 방송작가가 쓴 드라마 방송대본이 소설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본 사건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방송작가의 저작권침해가 인정된다면, 그 방송대본을 갖고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한 피고인 방송사(다만, 사안에서는 “방송사”와 “방송국 소속 제작사”가 등장하지만, 간단하게 이를 모두 방송사로 다루었습니다)의 저작권 침해도 인정될 것인가라는 쟁점이 다루어졌습니다(서울고등법원 1995.10.19. 선고  95나18736 판결, 대법원 1996. 6.11. 선고  95다49639 판결).
즉, 원고는 소설을 쓴 변호사이고, 피고는 방송작가(피고 작가)와 방송사(피고 방송사) 둘입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임관하여 6년간 검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하여 개업을 한 변호사로서, 그 동안의 자신의 검사 및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소재로 젊은 법조인이 검사 및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겪게 되는 고민과 갈등을 집필하여 "하얀나라 까만나라"라는 소설을 발행하였습니다.
피고 작가는 피고 방송사로부터 주말연속극 "연인"의 방송대본집필을 의뢰받고 검사, 변호사, 기자, 서양화가 등 2, 30대 연령층의 전문직업인들의 일과 사랑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구성하는 내용으로 50회분의 대본을 집필하였습니다.

원고의 소설은 30대의 젊은 주인공이 검사 및 변호사라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 소설로서 소설에는 주인공이 검사로서 피의자 등과 업무상 만나면서 그 사건 처리과정에서 일어나는 조직 내부의 업무처리에 관한 사실적 표현과 변호사로서 개업하여 피의자나 소송의뢰인들과 접하면서 사건을 수임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관한 사실적 표현이 그 주요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인"이라는 연속극의 대본 중에도 검사 및 변호사로 나오는 등장인물이 각 수사하거나 수임하여 처리하는 사건에 관한 구체적, 사실적 표현 및 위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 중에는 예컨대, 원고의 소설에 나오는 변호사가 맡게 되는 첫 사건과 피고의 대본상의 주인공인 변호사가 맡게 되는 첫 사건, 원고의 소설에 나오는 검사와 피고의 대본상의 주인공인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하는 사건내용이 각 주거침입절도죄로 동일하고 처분을 하게 되는 경위도 동일하며, 소설에서 나오는 "77고합1024호 강도치사"의 사건번호를 방송대본에서 그대로 이용하는 등의 동일 또는 유사점이 있었습니다.
 
3. 저작권침해 여부 및 판단기준에 관하여(고등법원 설시 중)

 

(1) “이른바 어문저작물 중 소설, 극본, 시나리오 등과 같은 저작물은 등장인물과 작품의 전개과정(이른바 sequence)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작품의 전개과정은 아이디어(idea), 주제(theme), 구성(plot), 사건(incident), 대화와 어투(dialogue and language)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러한 각 구성요소 중 각 저작물에 특이한 사건이나 대화 또는 어투는 그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다).”

 

(2)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하여서는 침해자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과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야 할 것인데, 실질적 유사성에는 작품속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함으로써 전체로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comprehensive nonliteral similarity)와 작품속의 특정한 행이나 절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양저작물 사이에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fragmented literal similarity)가 있다고 할 것(이다).”

 

(3) “...원고의 소설과 피고의 "연인"이라는 연속극의 대본을 비교해 보면, 원고의 소설과 위 피고의 대본 사이에는 소설과 대본이라는 표현형식, 그 주제 및 구성에 있어서는 전체적인 개념과 느낌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인정되나 그 구성요소 중 일부 사건 및 대화와 어투에 있어서 공정한 인용 내지 양적 소량의 범위를 넘어서서 원고의 이 사건 소설과 동일성이 인정되고,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이상, 위 피고의 "연인"이라는 연속극의 대본의 일부는 원고의 이 사건 소설의 존재를 알고 이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비록 원고의 이 사건 소설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부분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고 이른바 통상적인 아이디어(idea)의 영역을 넘어서 위 소설의 경험적, 구체적 표현을 무단이용하였다고 보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소설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고 할 것이다.”

 

(4) 법원은 위와 같이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의 두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면서, “실질적 유사성”은 작품속의 특정한 행이나 절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양 저작물 사이에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부분적 문자적 유사성) 뿐 아니라 전체로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도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실질적 유사성은 반드시 문언, 표현 하나하나가 똑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하는 경우에도 저작권침해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4. 방송사의 책임에 대하여(고등법원 설시 중)

 

(1) 원고의 주장: “원고는 ...피고 방송사는 피고 작가가 대본을 집필한 드라마 "연인"을 기획하고, 제작함에 있어서, 원고의 소설이 국내일간신문에 소개되는 등으로 피고 방송사는 피고 작가의 대본이 원고의 이 사건 저작권을 침해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 대본을 감독, 심의할 주의의무를 위배하여 그대로 드라마로 방영함으로써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 작가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고가 입은 손해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2) “그러므로 피고 방송사가 피고 작가의 저작권 침해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위 대본을 감독, 심의할 주의의무를 위배하였는가의 여부를 살피건대,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고, 오히려 (증거)에 의하면 피고 방송사는 1993. 2. 12.경 새주말연속극을 기획함에 있어서 관계자들의 기획안과 이야기 줄거리(시높시스)를 검토하여 "연인"이라는 제목의 연속극을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피고 방송사는 위 연속극의 작가로 피고 작가와 대본집필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위 계약체결시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계약사항에 명기한 사실, 일반적인 드라마제작은 작가가 이야기 줄거리를 완성하여 피고 방송사의 승인을 얻으면 그 때부터 작가는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하고 대본이 완성되면 그 대본에 대하여 피고 방송사가 심의를 하는데, 그 심의대상은 통상 대본의 내용이 방송에 적합한 지 여부에 국한되고 대본의 줄거리나 내용 등은 작가의 책임과 재량에 맡겨져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3)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방송사와 피고 작가의 사이에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상 피고 작가의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하여 피고 방송사가 특별한 주의, 감독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달리 피고 방송사가 원고의 저작권침해를 방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태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위 피고들에 대한 원고의 위 청구는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4) 법원은 위와 같이 설시하여, 방송작가가 만든 드라마는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만, 이를 제작, 방송한 방송사의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5. 판례에 대하여

 

본 사안은 1995년경 사건인데, 위 사건의 원고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님이십니다. 인품과 법률 지식도 훌륭하신 분인데, 당시 사회 일반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너무 없고, 또한 방송국에서 너무 안일하게 저작권 문제를 생각하는 것 같아 소송을 제기하셨다고 합니다(결국 방송국에 대한 소송은 지긴 했지만, 사실관계에 따라 방송국의 책임도 충분히 인정될 만한 사안입니다).
위 사건에서 재미있는 것은 원고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 번호(77고합1024호 강도치사)는 원고가 만든 가공의 사건번호인데, 피고 작가가 그것을 그대로 베껴 썼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 양 저작물에 남달리 똑같은 점이 나타나면, 침해가 비교적 쉽게 인정되기도 합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31) - “두근두근 체인지” 사건>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저작권법상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가 “표현은 보호되고, 아이디어는 보호되지 않는다”라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 원리를 잘 모르면, 창작자들은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도 다른 저작물이 자신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즉, 타인의 저작물이 침해한 것은 자신 저작물의 “아이디어”일 뿐인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작가들은 워낙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고, 저작물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저작권 범위를 넓게 보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위와 같은 원리를 몰라 실제로 저작권 침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는 저작권자가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회에는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가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문제된 사안에서(대법원에서 확정) 이러한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 실제로 법원의 재판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를 한번 살펴봅니다.

 

2. 사실관계
신청인은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라는 만화(이하 “이 사건 만화”) 1, 2, 3권의 작가이고, 피신청인 A는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이하 “이 사건 드라마”)의 작가, 피신청인 B는 위 드라마의 프로듀서, 피신청인 C는 위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사입니다.
신청인은 위 만화를 2003년경부터 창작했는데(만화는 미완성인 상태에서 소 제기), 피신청인 C가 2004. 5.부터 2004. 8.까지 매주 일요일 공중파를 통해 위 드라마를 방송하자 위 드라마가 자신의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피신청인들을 상대로 “영상저작물처분 및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습니다.
 
3. 1심의 판단(서울남부지방법원 2004카합2256)

 

(1) 의거관계
“먼저 이 사건 만화와 이 사건 드라마 사이에 의거관계가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보면, 이 사건 만화는 ...발행되었고, 인터넷 등을 통하여 그 내용이 대중에 알려져 있으며 ...그 소재, 사건의 전개방식 등에서 유사성이 발견되므로,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만화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저작된 것으로 보인다.”

 

(2) 실질적 유사성
“이 사건 만화는 변신 알약을 손에 넣게 된 못생긴 외모의 여고생 신동선이 변신약을 복용하여 미녀 새라로 변신하는 동안 친구인 ...등 주변 인물들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고, 한편 이 사건 드라마는 변신 샴푸를 우연히 사게 된 못생긴 외모의 여고생 모두가 샴푸를 이용하여 미녀 신비로 변신하는 동안 ... 주변 인물들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바, 결국 이 사건 드라마와 이 사건 만화는 모두 샴푸와 알약을 이용한 미녀로의 변신과 변신 이후에 일어나는 연예인과의 사귐 등 일련의 사건들을 공통의 소개 및 공통의 사건전개방식으로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유사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 만화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받던 여고생 신동선이 우연히 변신약을 손에 넣게 되어 미녀 새라로 변신, 친구들도 만들게 되고 연예인 연빈과도 사귀게 되지만, 이후 연빈에게 변신약의 비밀을 들키게 되어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연빈이 시키는 대로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이야기의 구성이 단조롭고 등장인물의 성격 등도 비교적 단순한데 반하여,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만화와 앞서 본 바와 같은 유사성이 있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 보다 다양하고 사건의 전개방식도 복잡하며, 이야기의 구성이나 인물의 심리묘사 등도 치밀하고, 극 전체의 완성도, 분위기 및 기법에 격차가 있는 등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사건 만화와는 그 예술성 및 창작성을 달리 하는 별개의 작품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만화와 이 사건 드라마가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종속적인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

 

(3) 1심은 위와 같이, 이 사건 드라마가 이 사건 만화에 의거하여 창작된 것은 맞지만, 양자에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4. 2심의 판단(서울고등법원 2005라194)

 

(1) 침해의 요건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것은 문학학술 또는 예술에 관한 사상감정을 말문자음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하는 창작적인 표현형식이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자체는 설사 그것이 신규성, 독창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하여야 한다(따라서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2) 실질적 유사성

“...두 저작물은 모두 변신을 소재로 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이성과 사랑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은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못생기고 뚱뚱한 여고생 주인공이 우연히 얻게 된 변신수단을 통해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하여 겪게 되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점, 못생겼으나 심성이 착하고 순수한 주인공 여고생, 주인공이 사랑하는 이상형의 남자, 주인공의 원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 등의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점, 주인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하여 인기와 사랑을 얻게 되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사건전개과정을 담고 있는 점 등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 사건 만화와 이 사건 드라마 사이의 공통적인 요소들은 못생긴 여자가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하는 것을 소재로 한 데 따른 추상적인 유형과 관계에 해당하거나 전형적인 구성 혹은 통상적인 사건의 전개과정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어서 이러한 유사점만으로는 창작적인 표현형식이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사건 만화와 드라마는, 등장인물간 관계설정에 있어... 구성과 주제에 있어... 현저한 차이가 있다.
또한... 위 각 구성요소별로 두 저작물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보면, 우선 이 사건 드라마의 대사의 내용과 표현 중 이 사건 만화에 등장하는 표현을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될 수 있을 정도로 그대로 베낀 부분이 있다거나 이 사건 드라마의 장면 중 이 사건 만화의 컷 내의 그림을 그대로 모방한 부분이 있어 두 작품 사이에 부분적 유사성이 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소명자료가 없으므로 결국 양자 사이에 주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줄거니나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과 상호관계 등 사이에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바, 기록과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두 저작물의 성격과 유형, 줄거리,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호관계 등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저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가 이 사건 드라마의 창작적 형식에 해당함과 동시에 지배적인 특성을 이루고 있어 이 사건 드라마로부터 이 사건 만화의 본질적인 특징 자체를 감득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이하에서는 작품의 성격과 유형, 줄거리 및 사건의 전개, 등장인물에 대해서 구체적인 요소를 개별적으로 비교, 고찰)

“그렇다면 이 사건 만화와 드라마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만화와는 별개의 창작성 있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와 달리 볼 만한 소명자료가 없으므로 채권자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5. 결론
다소 길게 판례를 살펴보았습니다(실제로 저작권 침해 사건을 맡으면, 양자의 실질적 유사성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주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생각보다 지루한 경우가 많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그린 만화라는 것도 결국에는 이전에 누가 그렸던, 또는 누가 글을 썼던 내용을 다시 재가공해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완전 독창적인 작품이란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의 저작물로써 인정되는 저작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원저작물 자체의 존재 또한 부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고, 이러한 취지에서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은 위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불필요한 논쟁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베꼈느니 안 베꼈느니.. 그보다는 무엇을 베낀 것인가가 중요하겠죠. ^^;). 독자 여러분들도 이러한 저작권법상 기본원리를 정확히 알고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30) - 미키마우스 패러디 사건>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기존에 나왔던 유명 만화 등장인물을 이용하여 새로운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경우로 김수정 선생님의 “둘리”를 주인공으로 그린 최규석 작가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만화가 있죠. 실제로 동호회지에서는 기존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패러디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기존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고약한 만화를 그린 것을 보신 적이 있나요? 예를 들어서 기존의 밝고 명랑한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포르노 만화를 그린다거나 하는...

이번에 다루어 볼 미키마우스 패러디 사건(Walt Disney Productions v. Air Pirates)은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의 많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들이 마약을 흡입하고 문란한 행동을 하는 만화를 그린 경우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2. 사건의 내용

원고 디즈니사는 여러 만화책의 저작권자인데, 위 만화에는 만화 주인공의 익살맞은 행동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피고는 Air Pirates Funnies라는 제목의 만화잡지를 발행한 이들로써, 원고측에 의하여 만들어진 만화 안의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들의 만화에 베낌으로서 디즈니사가 갖는 만화의 저작권 등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당했습니다.

피고의 만화잡지에 있는 주인공들은 원고만화의 주인공들과 그 모습이 매우 유사했으며, 그 주인공들의 이름도 동일하였습니다. 다만 디즈니사의 만화는 위 만화 주인공들의 순진한 웃음거리에서의 이미지를 심으려는 것이었지만, 피고는 이미 알려진 예를 들면 미키 마우스의 명랑한 얼굴, 환한 미소 및 해피 엔딩으로 연상되는 디즈니의 만화 주인공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의미를 갖는 비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데, 위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은 자유분방한 사고를 갖고 있으며, 난잡하게 생활하고 약물을 복용하는 반문화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3. 1심의 판단

위 사건에서 피고는 자신이 디즈니의 만화를 패러디한 것이고, 따라서 미국 저작권법상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하여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1심인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공정사용 항변을 배척하고 피고들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였습니다.

 

4. 2심의 판단

“피고들은 자신들의 복제행위가 침해를 구성할만큼 실질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대신에 디즈니의 만화를 의도적으로 패러디한 것이기 때문에 공정사용항변에 따라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의 그대로 베낀 경우가 아닐 때 법원들은 패러디한 자가 풍자의 대상을 회상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데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원작을 도용하였는지 여부를 물어봄으로써 복제의 실질성을 분석해왔다... 여기서 회화적인 이미지를 베낀 것은 가능하면 똑같게 디즈니의 작업을 따라 한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들은 처음 보았을 때 원작인 것처럼 보이고 자세히 조사해 보면 매우 다른 것임을 발견할 때 패러디의 유머스런 효과를 가장 잘 얻을 수 있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필요한 이상으로 베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의 그대로 베낀 행위를 정당화하게 될 이 주장에 대한 짧은 대답은 최선의 패러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대로 베끼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The short answer to this assertion, which would also justify substantially verbatim copying, is that when persons are copying a copyrighted work, the constraints of the existing precedent do not permit them take as much of a component part as they need to make the "best parody.")

최선의 패러디를 만들려는 희망은 저작권자가 가지는 창작적 표현에 대한 권리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패러디스트에게 원작을 떠올리는 데 필요한 것을 주는 것으로 그 균형을 맞출 수 있고 특별히 정확하게 베낄 필요가 없는 이 사건에서 그 기준은 초과되었다. 이미지 전체를 베낌으로서 피고들은 독자들에게 풍자되는 특별한 특성과 패러디되는 작품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베꼈다. 공정사용의 다른 요소들은 그 자체로 공정사용항변을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 법원과 다른 법원은 지나친 복제는 공정사용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전통적인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피고가 베낀 정도가 허용되는 수준을 넘기 때문에 저작권의 침해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은 정당하다.“

 

5. 결론

우리나라 저작권법과 미국 저작권법은 그 체계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법상 책임의 일반적 제한 사유로 “공정이용(fair use)"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 저작권법에는 개별적인 제한 사유(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등)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저작권법에 따르는 경우에도 만약 제3자가 원저작자가 만든 만화 캐릭터를 임의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저작재산권(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성립할 뿐만 아니라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 침해 또한 성립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피고측 반론인 패러디에 관해, 우리 저작권법상 패러디를 인정해 면책을 인정한 판례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계에서 패러디에 관한 논의가 이미 상당히 존재하고, 현실적으로 패러디라는 것이 문화계에서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향후 법적으로도 문제될 여지가 많다고 보이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29) - 만화연재계약의 해석>

 

  변호사 이영욱

 

 

1. 들어가면서

만화가들은 자신의 만화를 잡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신문 등 특정 매체(이하 “매체사”라고 합니다)에 연재할 기회를 갖습니다.

만화연재를 둘러싼 많은 법적 의문점이 있고, 실제로 그런 문제에 닥치기도 합니다; 연재를 하면 꼭 그 매체사(예를 들면 출판사, 신문사)에서 단행본 출판도 해야 하는 걸까요? 그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한번 주면 만화를 한번 연재한 다음에도 두 번, 세 번 연재할 수 있는 걸까요? 만화가 히트를 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3자가 나타나면, 만화가는 매체사의 허락을 받고 계약을 해야 할까요, 계약을 했다면 매체사와 그 수익을 나눠야 할까요?

만약 만화가와 매체사 사이에 연재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위와 같은 문제들은 계약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계약서의 속성상 모든 발생 가능한 경우를 다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항 위주로 간략하게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역시 계약 해석의 문제가 남게 되고, 많은 경우에는 심지어 연재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이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부터 출발하여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만, 본 원고에서는 위와 같은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과 그에 따라 여러 문제 상황들의 잠정적인 답을 한번 구성해 보겠습니다.

 

2.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

 

(1) 우선 만화연재계약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제되는바, 우리 대법원은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특히 당사자 일방이 주장하는 계약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3.14. 선고 2007다11996 판결 등).

 

이에 따라서, 계약서상 해당 사항에 대한 조항이 명백한 경우에는 이에 따라서 해결을 하면 됩니다(물론, 이 경우에도 계약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한다거나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면 해당 부분은 무효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모두 살펴보기는 힘들겠습니다). 조항의 문언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또는 아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는 우선 연재 계약 또한 출판 계약 내지 이에 준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기존의 출판계약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위 대법원 판례에서 살펴본 대로, 계약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진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해서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여러모로 종합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출판계약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전 만화가의 권리찾기 11회에서 살펴본 바 있는바, 크게 분류하면 (i) 저작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판자에게 양도하는 ‘저작재산권 양도계약’(물권적 성격), (ii) 저작권자가 출판을 허락하고,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 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출판허락계약’(채권적 성격), (iii) 출판권의 설정을 목적으로 하는 준물권계약인 ‘출판권설정계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출판권설정계약’이라는 것은 출판자가 설정계약에 기해 출판권 등록을 해야 하는 계약이므로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고, 통상 출판계약이라는 것은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출판사에게 일정 기간을 정해서 출판을 허락하는 내용이니 만큼, 우리 판례도 보통 채권적 성격인 ‘출판허락계약’으로 보고, 저작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저작권 양도계약‘은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저작권 양도를 받은 경우에는, 양수인이 저작권자와 거의 똑같이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 또는 계약서가 모호한 경우라면 “만화연재계약” 또한 만화가가 출판자에 대하여 출판을 허락하고, 이에 대하여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 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출판허락계약’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고, 다만 당사자의 의사와 거래의 관행상, 그러한 연재는 매체에 1회 연재하거나 인터넷에 일정 기간 연재하는 계약이되, 동시에 다른 매체에는 게재하지 아니하는 독점적 계약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을 양도받지 않은 채권적 권리자인 출판자(매체사)는 그 이상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 것입니다.

 

3. 여러 가지 의문점들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

 

(1) 연재를 하면 꼭 그 매체사(예를 들면 출판사, 신문사)에서 단행본 출판도 해야 하는 걸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연재계약은 해당 매체사에서 1회 연재할 수 있는 권리만을 주는 계약입니다. 따라서 만화가는 꼭 그 매체사에서 단행본을 출판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만약 해당 매체사에서 만화가가 연재한 만화의 단행본을 출판하고자 한다면 별도의 계약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한번 주면 만화를 두 번, 세 번 연재할 수 있는 걸까?

통상 계약당사자의 의사 또는 업계의 관행상(기존 만화잡지 연재 관행 등을 고려해볼 때) 만화연재계약은 매체에 1회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이고, 해당 매체사는 그러한 1회 게재의 대가로 만화가에게 고료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매체사에서 만화를 2회, 3회 연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3)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지면 연재의 원고료를 주면 인터넷에는 무료로 연재할 수 있는 걸까?

원칙적으로 인쇄 매체사가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준 것은 인쇄매체(신문, 잡지 등) 연재의 원고료이기 때문에, 추가로 대가를 주지 않고 인터넷에 연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계약 당사자의 의사 또는 업계의 관행이 해당 원고료로써 인터넷 연재의 대가를 포함하는 것인지가 문제될 것인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4) 매체사가 인터넷에 만화를 영구 무한정하게 게시하는 것도 가능할까?

이 문제는 근래 발생하는 이슈이므로 관행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연재계약은 채권적 계약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매체사의 권리도 원칙적으로 10년의 시효에 걸리고(민법 제162조 제1항), 더군다나 출판권은 특약이 없으면 맨 처음 출판한 날로부터 3년간 존속하는바(저작권법 제60조 제1항), 위와 같은 점과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해볼 때, 3년 보다는 짧은 정해진 기간에 한하여 게시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5) 만화가는 A 매체사에 연재를 하면서 이를 B 매체사에서 동시에 연재를 하거나 출판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출판계약은 출판자에게 “독점적” 출판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거래 관행이나 계약 당사자의 의사 또한 계약 기간 동안 출판자(매체사)에게 독점적 게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A 매체사 연재와 동시에 B 매체사에 연재를 하거나 출판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6) 연재를 마친 원고를 만화가가 다른 곳에 다시 연재하고 싶으면 원래 연재한 곳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할까?

매체사는 만화가와의 연재 계약 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연재할 권리를 가질 뿐이고 만화가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므로, 만화가는 연재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온건한 저작권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여, 다른 매체에 자유롭게 연재할 수 있습니다-즉,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7) 만화가 히트를 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3자가 나타나면, 만화가는 매체사의 허락을 받아야 할까? 그 경우 만화가는 매체사와 그 수익을 나눠야 할까?

매체사는 단지 계약 기간 동안 만화를 연재할 권리를 가질 뿐이므로,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제3자와의 계약에 대해 매체사의 허락을 받거나, 매체사와 수익을 나눠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일정 부분 양도받거나 그 수익을 나눠 갖는 식의 계약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은 이미 연재한 만화가의 권리찾기 11회, 12회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4. 결론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다 보면, 역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계약서입니다.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을 법원이 효력을 부정하거나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 상담을 하러 오는 많은 경우에, 이미 계약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하게 작성된 경우도 많더군요).

나름대로 저의 법적 지식과 기존의 판례, 학설로써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잠정적인, 조금은 용감한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실무적으로는 계약서의 미묘한 문언과 해당 계약을 둘러싼 당사자의 의사, 당시의 사정 등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은바,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중요한 계약서를 작성하려 할 때는 항상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작성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는 첩경이라는 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28) - 만화의 문학작품에 대한 저작권 침해>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만화를 둘러싼 최근 저작권법적 쟁점 하나가 만화와 다른 장르의 예술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따른 현상 아닌가 싶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실제로 만화와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게임 사이에는 (i) 만화가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게임의 저작권 등을 침해했다고 문제가 되기도 하고, (ii) 거꾸로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게임이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 살펴볼 판례는 만화가 문학작품(논픽션) 저작권 침해를 하였다고 문제가 사안인데, 만화와 관련된 분쟁으로는 거의 최초 사안이 아닐까 합니다(서울지방법원 1996. 9. 6. 선고  95가합72771 판결, 서울고등법원 1997. 7. 22. 선고 9641016 판결(확정)).   

 

2. 사실관계

 

원고(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람) 유럽에서 11년간 카레이서로 활동하여 사람으로서, 1987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리-다카르 랠리' 참가하여 완주한 다음, 22일간의 자동차 경주에서의 경험과 원고의 사상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하여, 1988 '사하라 일기'라는 제명으로 출판사를 통하여 발행하였다.

 

피고(소제기를 당한 사람) 만화가로서, 만화 주인공인 A 한국자동차 산업을 발전시켜 일본의 혼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누르고 세계 자동차시장을 석권한다는 내용으로 'B'라는 제명의 만화를 일간신문에 연재한 다음, 무렵 출판사를 통하여 만화를 12권으로 엮어 출판하였다.

 

원고는, 피고가 사건 만화를 집필하면서 국내 최초로 파리-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교포 카레이서인 원고를 사건 만화의 등장인물인 카레이서의 캐릭터로 사용하고, 원고가 방송 등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내용을 무단 인용하여 원고의 성명 또는 초상권을 침해하였으며, 또한 원고는 자신의 경험 등을 만화 또는 영화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피고가 사건 만화를 제작함으로써 이를 중단하게 되었는바 이는 상업적 이용 또는 공표권(right of publicity) 침해한 것이고, 자신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3. 판례의 내용

 

(1) 손해배상책임의 근거에 대하여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침해자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과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야 것인데, 실질적 유사성에는 작품 속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함으로써 전체로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 작품 속의 특정한 행이나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저작물 사이에 문장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 있다고 것인바, 앞에서 인정한 사실에 터잡아 원고의 '사하라 일기' 피고의 사건 만화를 비교해 보면, 원고의 '사하라 일기' 사건 만화 사이에는 표현형식, 주제, 구성에 있어서는 전체적인 개념과 느낌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인정되나, 구성요소 일부 사건, 대화, 사상의 표현에 있어서 공정한 인용 내지 양적 소량의 범위를 넘어서서 원고의 '사하라일기' 동일성이 인정되고,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도 인정되는 이상, 피고의 사건 만화의 일부는 원고의 '사하라 일기' 의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비록 원고의 '사하라 일기' 일부라고 할지라도 본질적인 부분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고, 이른바 통상적인 아이디어(idea) 영역을 넘어서 '사하라 일기' 구체적, 경험적 표현을 무단이용하였다고 보이므로 원고의 '사하라 일기'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고 것이다(1).

 

(2)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하여

 

먼저 침해의 범위에 관하여 보면, 앞에 증거에 의하면 피고가 집필한 사건 만화 원고의 ‘사하라일기’와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있는 부분은 만화 1,800페이지 10페이지 정도인 사실을 인정할 있으나,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파리-다카르 랠리 참가 부분이, 주인공인 A 국산자동차를 개발한 다음 랠리에 참가시켜 완주함으로써 우수성을 입증하여 국내 자동차시장을 석권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사건 만화의 1권부터 3권까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만화에 의한 원고의 저작권의 침해 범위는 만화의 10% 정도라고 봄이 상당하다.

나아가 피고가 배상하여야 재산상 손해액에 관하여 보면, 저작권의 침해로 인한 원고의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저작권을 침해한 사건 만화의 발행 부수에 따르는 인세 상당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것인데, 앞에 ...(증거를) 합쳐보면, 사건 만화의 가격은 1권당 4,000원인 사실, 1심공동피고 출판사는 만화를 100,000 출판한 사실, 피고는 사건 만화에 대한 인세로 만화 1권당 만화가격의 10% 정도를 받은 사실을 인정할 있고, ...달리 반증이 없으므로, 원고가 입은 재산상 손해액은 24,000,000{100,000 x 24,000(=4,000 x 6) x 10% x 10%} 된다.(고등법원)

 

4. 판례의 검토

 

우리가 누차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작권 침해는 “아이디어는 문제되지 않고, 표현이 문제됩니다.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1) 타인이 저작한 원저작물에 의하여 침해 저작물을 만들었을 (의거성), (2) 침해 저작물이 원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할 (실질적 유사성) 요건이 필요한 , 전자(의거성) 보고 베끼는 모습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아 접근할 기회가 있었다면(예컨대 원저작물이 널리 공표되었다거나 간행되었다면) 대부분 이를 추정합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실질적 유사성)인데, 표현의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함에 있어 판례는 “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을 나누어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저작권 침해 판단을 하고 있는바,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말로 보고 베끼지 않을 정도로 똑같을 정도로(심지어 오류 부분까지 똑같다면)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이 인정된다면, 비교적 쉽게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또한 판례에서는 손해배상의 계산 과정이 나타나는데요, 통상 출판물의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액은 “인세”로 계산해서 인정합니다. 계산 방법은 “손해배상액=인세*저작물 저작권 침해 부분의 비중”으로 계산합니다. 사안에서는 인세를 소매가의 10%, 저작권 침해 부분의 비중을 전체 만화 10% 계산하였습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27) - 사진 자료의 참조>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우리가 만화를 그릴 때 어떤 자료도 참조하지 않고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기존에 나와 있는 시각적 저작물, 그 중에서도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만화를 그리면서 “이런 식으로 만화를 그리는 경우 사진의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보셨나요? 우리가 그린 만화를 누가 베끼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흥분하지만, 다른 사람이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찍은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겠지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만화 “슬램덩크”의 일부 컷, 표지 그림 등이 미국 NBA 화보집을 모방한 것이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지금은 일본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관련 정보가 없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건 해결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와 같은 경우 일정 범위 하에서는 사진의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2. 우선, 저작권 침해가 되는가?

 

마치 소설을 보고, 그 줄거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되듯이, 또한 만화를 보고, 그 내용을 그대로 이용하여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되듯이, 타인의 사진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우 저작권 침해가 됩니다.

만약 타인의 사진을 거의 똑같이 그림으로 그리는 경우에는 저작권 중 “복제권” 침해가 됩니다만, 보통의 경우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될 것입니다. 즉 우리 저작권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원저작물을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저작물”을 2차적저작물로 규정하고, 같은 법 제22조에서는 저작권자가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갖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2차적저작물의 요건으로는 (i) 원저작물을 기초로 할 것, (ii) 실질적인 개변(변경)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 즉, (i)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하여 이것에 새로운 창작성을 가한 것으로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경우에는 전혀 별개의 저작물입니다. (ii) 다른 한편, 원저작물(기존의 저작물)에 실질적인 변경을 가할 정도로 수정을 한 것이 아니라 다소의 수정, 증감만을 한 경우에는 원저작물의 복제물에 불과할 뿐, 2차적저작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원저작물의 복제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결국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3. 어떤 경우 침해가 되지 않을까?

 

 

가. 사진저작물의 특성상 한계

 

사진 저작물이라는 것은 다른 시각적 저작물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작가의 의식적인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회화, 판화, 조각 등과는 달리,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피사체를 기계적, 화학적 방법에 의하여 재현하는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각적 저작물과 구별되는바, 예를 들어 "증명사진" 내지 "제품사진"과 같이 기계적 방법으로 다만 피사체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경우에는 저작물의 요건인 “창작성(creativity)”이 없으므로 저작물성을 부인할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 또한 사진의 저작물성이 문제된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사진들을 ① 햄제품 자체를 촬영한 "제품사진"과 ② 햄 제품을 다른 장식물, 과일 등 사물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진인 "이미지사진"으로 나누어 "제품사진"에 대해서는 "제품사진은 비록 광고사진작가인 원고의 기술에 의하여 촬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은 그 피사체인 햄제품 자체만을 충실하게 표현하여 광고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이때 그와 같은 목적에 부응하기 위하여 그 분야의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원고의 사진기술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며… 위와 같은 제품사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피사체를 충실하게 표현하였나 하는 사진 기술적인 문제이고, 그 표현하는 방법이나 표현에 있어서의 창작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니, 비록 거기에 원고의 창작이 전혀 개재되어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와 같은 창작의 정도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할 만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였지만, 한편, "이미지사진"에 대해서는 저작물성을 인정하여 침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긍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01. 5. 8. 선고 98다43366 판결).

 

쉽게 설명해서, 카메라 앵글을 잡고, 조명을 생각하는 등 정성을 들여 멋지게 찍은 사진은 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현재 존재하는 피사체를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은 저작물성이 부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계적 방법으로 다만 피사체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 그친 사진”의 경우에는 아예 사진의 저작물성이 부인되므로, 이를 참고하거나 베껴서 만화를 그린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이에 해당하느냐는 개별 사안별로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찍은 사진을 만화에 사용한다고 할 때, 보통 사람이 자신이 갖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로 밝은 날 자동 셔터를 이용해 찍은 사진은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저명한 사진 작가가 노출과 셔터 속도에 신경을 써가며 고급 카메라를 이용하여 하이 앵글로 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찍은 사진은 저작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터이니, 후자를 만화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고, 전자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겠지요.

 

 

나. 2차적저작물의 성격상 한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진을 보고 그린 만화는 사진의 2차적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경우에는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양 시각적 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의 판단은 어렵고도 복잡한 주제이므로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는 “양 저작물의 전체적인 느낌과 관념이 비슷한가”, 즉 통상의 사람이 만화를 보고 원작 사진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 자체에 원작 사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수차 살펴본 대로, 저작권 침해는 “표현”에서 문제가 될 뿐이지 “아이디어”는 문제되지 않으므로, 사진에서 단지 아이디어만을 얻어 만화를 그리는 것 또한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사진을 참작하여 만화를 그리는 경우에, 제3자가 보아 “이 만화, 사진 보고 그린 거네”라는 정도가 아니라면, 또한 사진에서 단지 아이디어만을 얻어 만화를 그린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4. 결론

 

조금 개그 같은 이야기지만, 사진 작가의 허락을 받아서 만화를 그리는 데 사진을 사용하거나, 자기가 찍은 사진을 만화에 그리는 데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겠습니다(^^;)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좋은 만화에서 사진자료는 빼뜨릴 수 없는 도구이자 원천이겠지요. 하지만 사진에도 엄연히 이를 찍은 사람의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사진을 충분히, 잘 사용하시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지 방법으로 현명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만화가의 권리찾기(26) - “홍길동” 사건 >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이번회에서 살펴볼 “홍길동” 사건은 비교적 간단한 사건인데, 상표권 침해와 캐릭터의 저작권 침해가 함께 다루어진 사건입니다. 검토 재판은 서울지방법원의 1심 판결로서 원고가 패소했고, 항소를 하지 않아 확정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2. 1. 11. 선고 2001가합4687 판결).


2. 사실관계

만화가 A는 허균의 널리 알려진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만화화하여 주인공을 홍길동으로 한 ‘풍운아 홍길동’, ‘홍길동’이란 제목의 만화책들을 저술하였고, 원고 B회사는 위 만화가 A로부터 위 만화책들에 관한 저작권 및 만화책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캐릭터들에 관한 저작권을 양도받은 후, 저작권양도등록을 마쳤습니다.

원고는 그 후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만화영화화하여, 만화가 A의 그림을 바탕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돌아온 영웅 홍길동 ’이란 제목의 만화영화를 제작하고, 관련 만화책과 그림책 등을 제작, 출판하였습니다. 또한 원고는 위 홍길동 그림, "홍길동“, ”HONG GIL DONG" 등을 상표로 하여 다수의 상품에 대해 상표권 등록을 마쳤습니다.

한편, 피고 C시는 학계에 의해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자신의 마을에 살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홍길동을 상품화하여 지역을 선전광고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계획을 세운 후, 제3의 프로덕션에게 홍길동 캐릭터의 개발을 의뢰하여 홍길동의 기본 캐릭터와 응용 캐릭터들을 개발하고, 보조 캐릭터들을 개발했습니다.

피고 C시는 캐릭터 관련 전시회에서 위 홍길동의 기본 및 응용 캐릭터와 보조캐릭터들을 광고하여, 위 피고의 홍길동 캐릭터들의 사용을 원하는 기업체들에게 사용을 허락함으로써, 캐릭터 사용허락을 받은 기업들이 자신들이 제조,판매하는 초코렛, 우산, 티셔츠,시계 등의 상품에 피고가 개발한 홍길동 캐릭터들을 사용하여 제품을 제조, 판매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는 피고가 자신의 상표권과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면서 상표권 침해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3. 상표권 침해에 관하여  

판례는 

“우선, 이 사건 등록상표들과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동일하거나 유사한지 여부에 관하여 살피건대,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홍길동을 나타내는 그림과 ‘홍길동 ’,‘HONG GIL DONG ’ 또는 ‘H.gildong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으로써,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과 이 사건 등록상표들이 호칭 및 관념의 면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듯하다.

그러나, ...상표의 유사여부는 궁극적으로는 상표법의 제도적 목적인 상표 모용에 의한 혼동초래 행위를 금하여 상표에 화체된 상표권자의 영업상의 신용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상품의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며, 비록 2개의 상표가 상표 자체의 외관 ·칭호 ·관념에서 서로 유사하여 일반적 ·추상적 ·정형적으로는 양 상표가 서로 유사해 보인다 하더라도 당해 상품을 둘러싼 일반적인 거래실정과 수요자의 일상 언어생활 등을 종합적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거래사회에서 수요자들이 구체적 ·개별적으로는 상품의 품질이나 출처에 관하여 오인 ·혼동할 염려가 없을 경우에는 양 상표가 공존하더라도 당해 상표권자나 수요자 및 거래자들의 보호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양 상표가 동일하거나 유사하지 아니하다 할 것인바, ...홍길동이 허균의 유명한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으로서 수요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고, 관공서나 금융기관 등에서 통상적인 한국인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홍길동이란 호칭 및 관념만으로는 수요자들이 홍길동이란 호칭 및 관념을 갖는 상표가 사용된 상품을 특정 출처의 상품으로 인식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상표권자인 원고에게만 위와 같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홍길동이란 호칭과 관념의 사용을 독점적으로 허락하는 것이 상표법 제6조, 제51조 규정 등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부당한 점, 이 사건 등록상표들의 외형은 홍길동을 단순한 고딕체로 필기한 것으로서 그 글씨체 등에 있어서 수요자들의 인상에 남을 뚜렷한 특징이 없고,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은 대부분 홍길동을 나타내는 그림과 문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홍길동을 나타내는 그림 부분이 수요자들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에, 이 사건 등록상표들과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그 전체적인 외관에 있어서 서로 다른 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로부터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의 사용허락을 받은 기업들이 자신들이 제조, 판매하는 초코렛, 우산, 양산, 티셔츠, 시계 등의 상품에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상표들을 함께 사용할 것이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사용되더라도 수요자들이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사용된 상품을 원고가 제조, 판매하는 상품으로 구체적·개별적으로 상품의 품질이나 출처에 관하여 오인·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없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등록상표들과 피고의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4. 저작권 침해에 관하여

판례는, 

“...피고가 이 사건 원고 저작물을 베껴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개발하는 등 이 사건 원고 저작물에 의거하여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개발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피건대, 이 사건 원고 저작물과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이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을 표현함에 있어 얼굴과 몸통의 비례, 캐릭터의 연령, 얼굴 모양, 표정, 인상 등이 상이한 점에 비추어 보면, ...소외 프로덕션이 피고의 의뢰에 따라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개발함에 있어 이 사건 원고 저작물을 베껴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개발하는 등 이 사건 원고 저작물에 의거하여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개발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가 이 사건 원고 저작물을 베끼는 등 이 사건 원고 저작물에 의거하여 이 사건 피고캐릭터들을 개발한 다음, 이 사건 피고 캐릭터들을 사용하여 초코렛, 우산, 양산, 티셔츠, 시계 등의 상품을 제조, 판매함으로써, 원고의 이 사건 원고 저작물에 관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원고의 위와 같은 주장은 결국 이유 없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5. 맺음말

본 판례는 비교적 간단한 사안이었으나, 상표권 침해와 저작권 침해 양자를 다룬 재미있는 판례였다고 생각됩니다.

우선은 “홍길동”이라는 것이 공공의 영역에 있는 우리 고전소설상 인물이라는 점이 많이 고려되었다고 생각되고, 상표의 경우 “상품 출처의 오인 혼동을 일으킬 우려”를 기준으로 판단하였고, 저작권 침해의 경우 보통 (1) 의거성과 (2)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나 본 사건에서는 아예 “의거성”도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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