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14) - 패러디


이영욱 


1. 들어가며

 

최근 나오는 만화들에서, 이미 존재했던 유명한 기존 만화를 패러디 한다거나(슈퍼맨, 스파이더맨, 둘리), 유명한 대중 문화를 패러디 하는(광고, 개그) 등 ‘패러디’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패러디에 관한 우리나라 판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패러디’는 현단계에서는 어떠한 식으로건 단정짓기 어려운 주제이나, 일전에 우만연에서 행했던 강좌에서 많은 분들이 ‘패러디’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던 만큼, 기존 연구들을 간략히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2. 패러디와 저작권 침해, 2차적 저작물

 

패러디는 보통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원작의 약점이나 진지함을 목표로 삼아 이를 흉내내거나 과장하여 왜곡시킨 다음 그 결과를 알림으로써 원작이나 사회적 상황에 대하여 비평이나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패러디는 통상 2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데 그것은 ① 패러디의 원작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② 그것이 원작 그 자체가 아닌 패러디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패러디한 ‘원작’만이 드러나는 경우라면 그것은 ‘실패한 패러디’로서 패러디가 아닌 복제권 침해 등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게 된다.

 

패러디는 보통 원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침해와 관련하여 문제된다. 우리 저작권법상 ‘2차적 저작물’은 ① 원저작물을 기초로 할 것과 ② 실질적인 개변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요건로 하는바, 패러디는 보통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여 원저작물과는 다른 실질적 개변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므로, 패러디는 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패러디가 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과는 별개의 독립된 저작물로서, 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문제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 저작권법 제25조의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이 적용될 수 있으나, 패러디의 문제를 위 조항으로만 해결하는 것은 미흡할 것으로 판단되므로, 미국에서 발전된 ‘공정사용’의 판례이론을 통하여 원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하지 않는 패러디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을 검토해본다.

 

 


3. 미국 판례에서 나타난 패러디의 요건


(1) 비평 또는 논평이 있었는지 여부

패러디는 원작을 비평 또는 풍자해야 하고, 그것이 원작을 비평 또는 풍자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상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패러디에서는 통상 비평 또는 논평을 곁들이고 있으므로 이 요건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2) 저작물 사용의 목적과 성격

원작을 이용해 패러디를 만드는 행위가 상업적 성격을 가지는 것인지 비상업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인지가 문제되나, 이 기준은 결정적인 것은 아니고 상업적 성격을 가진 이용행위에서도 패러디가 인정된 사례가 다수 있다.


(3) 이용된 분량과 실질적 가치

이는 원작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분량을 차용했는가를 살펴보는 기준인바, 미국 판례는 최초에는 “원작을 인식하기에 필요한 분량까지만” 차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으나, 최근에는 패러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작을 떠올리는 이상의 차용”도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다만, 원작의 거의 그대로를 복사하는 것은 만약 그것이 패러디의 성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허용되어서는 아니된다.


(4) 원작의 시장수요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

이 요소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공정사용의 네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시한 바 있고, 다른 3가지 요소도 모두 직간접으로 본 요소와 연관이 되어 있다. 이것은 패러디가 원작의 시장적, 경제적 가치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여, “원작의 현재 또는 잠재적인 시장적, 경제적 가치를 감소시키거나 그러한 수요를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패러디”에 대해서는 자유이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관련 판례


(1) 미국연방대법원의 이른바 “Pretty Woman" 사건

 

랩 그룹인 2 Live Crew는 Roy Orbison의 발라드곡 “Oh, Pretty Woman"을 패러디하여 코믹한 가사를 통하여 원작을 풍자하고, 그 곡명도 똑같이 “Oh, Pretty Woman"으로 불렀다. 이에 저작권을 갖고 있는 Acuff-Rose Music사가 가수와 레코드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저작물이 상업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공정사용의 항변이 당연히 배척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면서, 그 사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의 성격,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 전체에서 사용된 부분이 차지하는 양과 상당성(항소심은 “원작으로부터 지나치게 많이 베꼈다”고 판단했으나 그 판단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이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이는 공정사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2) 독일 연방대법원의 “Alcolix"사건

 

    

 

 

원고들은 로마와 갈리아족의 싸움을 배경으로 하는 Asterix와 Obelix라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유명한 만화인 “Asterix”라는 만화의 저작자 등이고, 피고는 Alcolix라는 만화의 발행인인 동시에 편집인인데, “Alcolix”라는 만화는 그 배경을 현대로 하여 Alcolix와 Obenix라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잔혹성을 가진 두 주인공이 등장하고, “미군부대”가 “갈리아 마을”을 공격하는 등 풍자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원고들은 Alcolix가 Asterix를 표절하였고, 원고들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였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피고는 자신의 만화가 패러디임을 주장하였다.

 

항소심은 Alcolix가 Asterix만화의 특징들을 오히려 강조해서 사용했고, 만화의 여러 가지 점을 볼 때 이를 Asterix의 패러디로 볼 수는 없으며 Asterix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에 대해, 항소심은 “과연 Alcolix에서 Asterix를 어느 정도로 이용한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확정하지 않았고, “Alocolix라는 만화가 독립적인 신작으로 성립했는지”를 판단하지 않았으며, 패러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작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종래의 저작물로부터 차용된 개성적인 특징들이 퇴색하였음을 전제로 하나 이를 너무 엄격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 등을 판시하면서, 위와 같은 여러가지 점에서 항소심은 "Alcolix“가 전체적으로 보아 독자적인 새로운 저작물로 여겨질 수 있는지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면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5. 결론

 

“패러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또는 우리나라와 법제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판례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내의 학자 또는 실무가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만화가로서 패러디를 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① 원작의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차용해서는 안된다, ② 원작의 시장적 가치를 침해하는 내용을 그려서는 안된다, ③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본 작품이 패러디임을 알게 하여 원작과의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등으로 생각된다.

 

이런 문제가 소송화된 경우, 법원으로서도 “지나치게 베꼈다” “이미 알려진 명성있는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판단이 들면 어느 정도 손해배상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니 주의가 필요하겠다. 

 

 



<참고문헌>

‘저작권법’(제3판), 오승종 이해완, 박영사

‘패러디 항변을 둘러싼 저작권법상 쟁점과 과제’, 김원오, 안암법학 제14호, 2002년

“패러디와 저작물의 자유이용”, 엄동섭, 창작과권리(세창출판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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