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한달에 한번씩 발간하는 "서울지방변호사회보"의 "유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코너에 2008. 12. 실렸던 글입니다. 저에 대해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한번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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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식이 희소식]

 

만화 그리는 변호사, 이영욱

 

 

 

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어린 눈에 그림을 정말 잘 그리던 형의 영향이 컸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미술 시간은 항상 신나고 좋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미술대회 등에서 몇 번 상을 받은 적이 기억이 납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특별한 동기도 없이 법대에 들어가긴 했지만(당시 면접 볼 때 “왜 법대에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교수님 질문에 “졸업한 다음에 진로가 넓을 것 같아서”라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가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은 대학에 다닐 때는 전공 공부보다는 만화 동아리에서 더 오래 뒹굴면서, 만화, 영화, 문학 등 여러 잡스러운 문화 탐닉에 더 열을 올렸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만 꼽으라면 만화 동아리 작품집을 멋지게 만들어낸 일이니까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예 애니메이션 학원에 6개월간 다니기도 했고, 졸업 후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면서, 애니메이션 만드는 회사, 광고회사에서 약 3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상도 두어 번 받았군요.

실은 저의 만화가로서의 데뷔(?)는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신림동에서 늦깎이로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 동네의 고시정보신문에 연재를 하게 된 “고돌이의 고시생일기”라는 4컷 만화였습니다(당시 집에는 비밀로 하느라 가명으로 연재를 했습니다). 만화 연재를 할 당시에는 나름 고시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오니 그 만화 얘기를 하는 많은 동기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를 시작한 2년차, 당시 대한변협 홍보이사셨던 하창우 변호사님이 우연히 저의 “고돌이의 고시생일기” 만화를 보시고 “대한변협신문”에 변호사를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유를 하셨습니다. 겨우 변호사 2년차가 우리나라 변호사 협회를 대변하는 신문에 변호사에 관한 만화를 그린다? 정말로 그런 만화를 그릴 자신도 없고 자격도 없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고사했지만, 하창우 이사님이 강권을 하다시피 하셔서 그리기 시작한 만화가 지금 대한변협신문에 연재중인 “변호사 25시”라는 만화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만화를 위해 무슨 각별한 노력이라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그냥 만화를 그리는 것, 보는 것이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변호사를 하면서도 만화, 예술, 문화,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업무를 꼭 해보고 싶어서 현재 소속된 법무법인에서 원하던 업무(엔터테인먼트, 저작권, 특허, 상표 등)를 하고 있고, 그러면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적재산권법학과에 다니면서 만화와 저작권법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를 고르면서, 평소 꼭 쓰고 싶었던 만화와 저작권법의 관계에 관한 주제를 물색하게 되었고, 지도 교수이신 안효질 교수님의 권유로 조금은 엉뚱하게 “만화 창작 및 이용의 저작권법상 문제”라는 주제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보통 석사 학위 논문은 매우 좁은 영역에 관한 심도 깊은 글을 쓰지만, 저의 경우는 “저작권”과 “만화”에 대해 아주 얇고도 넓게, 그간 만화에 관해 발생하였던 저작권법상 문제되었던 모든 사례들을 깊지 않게, 하지만 조금씩 다루는 약간 특이한 논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만화 창작 및 이용의 저작권법상 문제, 실태, 현황 등


요즘 우리나라 만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만화가 학습의 수단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법천자문”, “살아남기 시리즈”, “먼나라 이웃나라” 등 만화가 빠른 추세로 학습 내지 학교 공부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경우에 비추어 이미 예견이 되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빨리빨리” 성격을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경우 참으로 급격하게 “공부의 만화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그러고 보니 저도 법학 공부를 만화로 하는 책들을 쓰고 있네요-이미 “만화로 배우는 형사소송법 판례 120”이 나왔습니다).

또한 이른바 “웹툰”(인터넷을 통해 보는 만화)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바, 이는 미국, 일본, 유럽 등 만화 선진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진 경향으로 생각됩니다.

만화와 관련된 법적 문제로 빈번한 것은 만화가 영화 또는 드라마화, 게임화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오히려 만화의 애니메이션화보다 더욱 자주).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허영만 작가님의 “타짜”, “식객”은 영화화, 드라마화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강풀 작가님의 만화도 나오는 족족 영화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본 만화까지 국내에서 영화화가 되어 “올드 보이”, “미녀는 괴로워” 등이 영화화가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현상과 병행해서 나타나는 것이 만화 저작물과 다른 저작물(영화, 드라마, 소설)간의 저작권 분쟁입니다. “태왕사신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인데, 아직 이러한 유형의 저작권 침해의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대부분 법원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함에 상당히 인색한 듯 합니다(침해가 문제되는 부분을 “공공의 영역”에 있다거나 “아이디어”라고 보는 경우가 잦습니다).

만화 출판과 관련해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서적의 판매에 따른 인세의 문제입니다. 이는 반드시 법적 문제라기 보다는 출판계 일반의 문제인데, 현실적으로 작가가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한 후에는 과연 자기의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인세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산정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적인 문제입니다. 일본에는 1억권 이상 팔린 만화가 10여종이 넘는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1,000만권대로 팔린 만화들이 한 두 종 있다고 하는데(대부분 학습만화), 작가 인세로만 따져도 수십억, 수백억이 넘게 되니 쉽게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제가 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냥 좋아서? 마치 경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구두 쇼핑을 좋아하는 아가씨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 만화가 재미있는 만화일까요? 저로서는 별로 재미있는 만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시니컬하고, 지나치게 신중하고, 게다가 작가 자신을 감추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실은 독자인 변호사님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서슴 없이 해주는 “솔직한” 발언을 바라고 있을 텐데요. 하지만 아무래도 대한변협신문에 판검사, 의뢰인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듯한 너무 직설적인 만화를 그리는 것도 저로서는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1년 이상을 열심히 준비해도 여러 가지 외적인 이유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소송과는 달리, 매주 마감을 해서 그 다음 주면 신문에 연재되고 곧장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즉, 결과가 나오는) 만화연재는, 저에게는 마감 스트레스도 많이 주지만, 다른 한편 뿌듯하고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행복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평소 치하와 성원을 해주신 많은 변호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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