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문화' 2019. 4.(Vol 296)에 게재된 저의 글입니다.


필자는 변호사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다소 특이하게 만화를 그리는 취미를 갖고 있다. 법학과 공부에는 흥미를 도무지 못 느끼며 예술과 문학에 열중하다 대학을 졸업하던 때 만화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조그만 상도 받았고, 지금은 대한변협신문에 <변호사25시>라는 4컷 만화를 매주 1편씩 12년째 연재하고 있으니 아마추어 창작자치고는 꽤 경력이 있는 편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발간한 <저작권 별별 이야기>라는 책에 20편의 판례를 만화로 그려 발간하기도 했으니 위원회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렇다 보니 주위에 창작자인 지인도 많은 편이고, 소송을 맡아서 진행할 때에도 창작자들과 비교적 말이 잘 통하는 편이다. 그런데 창작가들이 저작권법과 법 제도에 부딪히며 느끼는 미묘한 괴리 하나가 있다. 이른바 ‘아이템’이다. 아이템이라는 것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작품 중의 결정적 사건, 중요한 소재’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면 되겠다. 우리 판례에서도 ‘두근두근 체인지 사건’(서울고등법원 2007. 1. 16. 선고 2006다21219 판결) 등으로 종종 사건화가 되는 듯하고, 필자가 다룬 사건만도 서너 건이 생각이 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만화 <설희> 사건을 보면, 역사서에 기록된 광해군 시대에 목격된 정체불명의 비행물체, 그리고 그 비행물체에서 떨어진 또는 그 비행물체와의 접촉을 통해 불사의 몸이 된 주인공 등의 유사점이 발견되었다(해당 사건은 제삼자의 중재로 원만히 해결되었음). 최근에는 공모전 심사 과정에서 응모자가 제출한 작품의 내용을 심사위원이 임의로 작품으로 만들었다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으니, 저명한 창작자, 작가들은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들어갈지 여부를 고심해야 할 듯하다.


가상의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창작자인 내가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까 고심 고심하다가 생각난 기발한 아이템으로 창작물을 만들고 있는데, 현재 작품으로 계속 창작되고 있는 위 아이템을 제삼자가 작품으로 만들어(비록 스토리나 내용이 어느 정도 다르지만) 오히려 후발적으로 제작된 작품이 대대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면?

이때, 물론 먼저 창작을 하고 있던 내가 창작하고 있던 작품을 그대로 완성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먼저 창작을 하고 있었고, 나에 대해서 시비를 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누가 이 아이템의 원 주인인가, 누가 누구 것을 베낀 것이냐, 누가 원작이고, 누가 아류이냐’이다. 어쩌면 창작자의 자존심 또는 감정 정도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실제 대중들의 평판에도 영향을 미쳐, 작품의 흥행이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먼저 생각해낸 아이템을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 내용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흥행하는 작품을 만들어버려 오히려 내가 ‘모방자’가 되어 버리는 억울함과 대중으로부터도 ‘아류’로 외면받는 실질적 불이익은 창작자 입장으로나, 작품의 경제적 가치의 측면으로나, 억울하기 짝이 없지 않겠는가?


잘 알다시피 저작권법에서는 ‘표현은 보호하고,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후발 작품의 표현이 다르다면 저작권법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겠다.

이 경우 일부 판례에서 인정되고 있는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 법리로 보호를 받거나, 새로 제정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차목(거래 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 목적에 위반하여 자신 또는 제3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하여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제공하여 사용하게 하는 행위) 또는 카목(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으로 보호받을 여지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이때는 더 보호받을 방법은 없는 걸까? 아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는 걸까? 내가 고심해서 만들어낸 ‘아이템’을 빼앗긴 억울함은 현재 법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일까?


법률가로서는 현행법과 판례에 따라 ‘그런 경우까지는 보호받지 못합니다’라고 다소 냉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어도, 필자도 매주 4컷 만화 원고 마감을 하고 있는 창작자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그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종종 고민하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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