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5) - 저작권의 보호범위>

                                                                이영욱 


 

1. 들어가며

 

오늘은 조금은 따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에 다룰 주제는 ‘저작권법의 목적’으로 크게 보면 여기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저작권법 전반의 쟁점들에 대한 입장들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문제이다.

 

예를 들면, 만화가로서 저작자는 자신의 만화라는, 저작물의 권리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만화가들도 어릴 때에는 남의 만화를 보고 베껴보지 않았는가? 내 만화에서 다른 만화(예술)의 영향을 받은 요소는 아예 없으며 100%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예컨대 내 만화에서 만화의 칸을 나누고 말풍선을 그려 넣는 것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의 작품을 보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 아닌가?


2. 저작권법의 목적

 

과연 저작권법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저작권법 제1조는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 저작자의 권리보호

 

물론 저작권법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는 저작자와 저작인접권자의 이익보호이다. 사실 저작권이라는 권리가 집이나 돈처럼 유형적으로 보이는 권리도 아니고, 저작권이 인정된 것도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소유권은 이미 로마시대부터 보호되었지만 저작권이 보호된 것은 18세기 이후이다). 또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저작권법이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보호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저작자의 이익보호는 저작권법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지만 저작자가 창작한 저작물 또한 결국 선인들이 쌓아놓은 문화유산의 바탕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유명한 예로 데즈카 오사무는 ‘아톰’의 뾰족한 머리가 미키마우스의 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고백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2) 저작권의 권리보호의 제한

그렇다면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보호에도 그 목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작권의 보호범위를 분명히 해서 그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저작권자와 저작물을 보호하고 그 범위 밖에서는 이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이를 ‘public domain’의 영역이라고 한다) 경계선을 그어주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법에서 ‘공정한 이용’과 ‘문화의 향상발전’에도 저작권법의 목적이 있다고 함은 그러한 뜻에서 볼 수 있다.


3. 저작물의 성립요건과 보호범위

 

대법원에 따르면 저작물이란 ‘표현의 방법형식 여하를 막론하고 학문과 예술에 관한 일체의 물건으로서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에 관한 창작적 표현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의 정의에 따르면 과연 우리 일상생활에서 저작물 아닌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작권의 범위가 넓어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저작권법의 목적은 저작자의 권리보호 뿐만 아니라 일반 공중의 저작물의 이용과 그를 통한 문화발전에도 그 목적이 있느니만큼, 저작물의 보호범위를 확정할(어찌보면 좁힐)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호범위’에 관하여 만화가가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것으로 ‘아이디어 표현 이분법’의 원칙을 들 수 있다. 이는 ‘저작권의 보호는 표현에만 미치고 소재가 되는 아이디어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저작권법상 원칙 중 하나이다.


4. 저작권의 보호범위와 저작권 침해(표절)

 

예를 들어, ‘뚱뚱하지만 실력있는 노처녀가 우연히 멋지고 젊은 남성으로부터 구애를 받는다’라는 스토리는 ‘아이디어’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테마로 하여 만화를 그린다고 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컨대 ‘프랑스에서 파티셰가 되는 공부를 하고 온 노처녀가 젊고 멋진 커다란 서양요리 음식점의 사장으로부터 계약 연애의 제안을 받는다’와 같이 ‘내 이름은 김삼순’의 ‘표현’에 해당하는 부분을 포함한 만화를 그린다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고 그린 것이어야 하는 등의 고려해야 할 다른 많은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예를 들어본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막강한 능력을 가진 자가 악당들을 무찌른다’라는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의 변신복장 가슴에 S자를 그려넣고 평소에는 그가 신문기자로 일하며 위급할 때만 변신을 한다는 만화라면 ‘슈퍼맨’의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표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이런 범주에서 보면 문제의 쟁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러한 ‘아이디어’에까지 저작권을 인정해준다면, 그런 아이디어를 이용한 일반 공중의 다른 저작물의 자유로운 생산, 이용을 막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작자의 권리보호’와 ‘공정한 이용 도모와 이를 통한 문화향상’은 저작권법의 커다란 두 개의 테마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