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 찾기 (12) - 계약서의 작성(2)>


                                                                                                                  이영욱 변호사

 


지난 회에서 우리는 계약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권리 설정’ 부분을 보았다. 이하에서는 계약서의 다른 부분들을 살펴본다.


4. 필자가 본 계약서들의 다른 부분들에 관하여

 

(1) 추가적 권리 설정 부분


제0조 ① ‘을’(만화가)는 ‘갑’(출판사)에게 저작물에 대하여 ‘2차 저작물 작성권’을 준다. 

② 제1항의 '2차 저작물 작성권'의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본 계약에 따라 독점적·배타적으로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만화 및 이에 부수되는 캐릭터관련 저작물을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2. 저작물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성명·형상 등 기타사항을 이용하여 2차적 저작물이나 편집저작물을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제0조 “갑”(매체사)은 위 연재 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간 위 연재만화 저작물의 사용(단행본 출판, 번역, 개작, 연극, 영화, 방송, 녹음, CD출판물, 인터넷 및 온라인 등 일체의 위 연재만화 이용에 관한 권리)에 관한 최우선적인 권리를 갖는다.

 

제0조 위 제0조의 경우 위 연재만화의 사업에 대해 “갑”과 “을”이 협의하여 별도의 계약에 의하여 정하되 적극적인 사업진행을 위해 “갑”은 “을”의 허락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우선적으로 진행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조항의 큰 문제점은 만화가는 계약을 ‘출판’, ‘매체 연재’라는 내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위와 같은 조항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만화가는 자신의 저작권 등 다른 권리를 양도해 버리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즉, 위와 같은 계약의 내용은 단행본 출판, 연재물 출판의 범위를 넘어서서 출판사, 매체사에게 작가의 저작물을 양도하거나 저작물의 추가 사용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게 된다.


위 계약서들을 보면, 만화 저작물을 사용하여 상품화 사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출판사에 아예 넘기거나, 우선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더군다나 ‘허락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사업을 우선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은, 해당 부분에 대해 출판사에게 일방적으로 저작권법 위반 등에 대해 면책의 여지를 주게 된다.  


(2) 계약상의 지위 양도


제0조 ① “을”(만화가)은 “갑”(매체사)에게 위 연재만화의 복제권, 공표권, 방송권, 전송권, 전시권, 배포권, 2차적 저작물 등의 작성권 등의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일체의 권한을 부여한다.

② “갑”(매체사)은 제3자에게 제3항의 권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다.


‘출판사(매체사)가 제3자에게로 자신의 계약상의 지위를 양도할 수 있다’거나, ‘해당 권리를 허락할 수 있다’거나 하는 내용은 만화가에게 매우 불리하다. 왜냐하면, 만화가는 해당 매체의 특성과 내용을 보고, 당해 매체에 한정하여 연재를 허락하거나 출판을 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조항에 의하면 실제로 만화가가 자신의 작품의 유통 및 사용에 대해서 거의 제어할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통상의 계약서에서는 ‘허락 없는 계약상 지위 양도, 권리 양도’ 등에 경우에, 이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의 한 사례에서는 출판사가 만화가의 만화를 이용한 상품화권에 대해, 자신의 자회사에게 매우 저렴하게 권리를 양도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은 자회사가 대부분 수익하고, 출판사는 자회사로부터 매우 저렴하게 사용료를 받은 후, 그 중 일부를 작가에게 분배하여 문제가 된 사안이 있다(당시 계약서에도 ‘제3자에게 권리 이전, 지위 이전 가능’ 조항이 있었다).


(3) 연재의 계속 부분

 

제0조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경우 “갑”(매체사)은 “을”(만화가)에게 1주간의 기간을 정하여 최고하고 그럼에도 시정이 되지 아니하면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1. 만화의 인기도가 하락하여 계속 연재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2. 위 만화가 “갑”의 편집방향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

3. “을”(만화가)이 본 계약의 각 조항에 위반한 경우

4. “갑”(매체사)이 편집 방향을 전환하는 등으로 위 만화의 연재중단이 결정된 경우


위 조항에서 ‘편집방향을 전환하여 연재중단이 결정되는 경우’를 해지 사유로 하는 것은, 계약의 일방에게 자유로운 해지권을 주는 셈이 되어(이러한 것을 ‘수의조건’이라고 한다) 계약의 해당 부분은 무효로 볼 소지가 있다. 또 계약위반이 해지사유가 됨은 이해할 수 있으나, ‘갑’의 계약위반 부분을 뺀 것은 지나치게 불공평한 조항으로 판단된다. 


5. 결어


(1) 계약서는 작성한 대로 효력을 가진다.

우리는 자칫 “이런 계약서는 불공평한 내용이니까, 나중에 법원에서 무효라고 판단할 꺼야”라는 등으로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작성된 계약서는 원칙적으로 작성된 내용대로 효력을 가지고, 법원이 해당 부분을 무효로 볼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현저히 부당한 계약일 경우 등으로 한정된다.

따라서, 중요하고 복잡한 계약서의 경우에는 법률전문가의 자문 내지 도움을 받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 특히 권리의 설정, 양도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계약서는 내용대로 효력을 발생하므로, 특히 ‘권리의 설정’, ‘권리의 양도’ 부분은 극도로 주의해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자칫,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의 귀중한 지적재산권을 남에게 거저 넘기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3) 계약서의 양식은 자유롭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특별한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구두 계약’은 거의 의미가 없으니만큼, 문서로 작성해야겠지만, 정식 조항을 갖춘 계약서 작성이 힘들면 계약의 중요한 내용(연재 매체, 횟수, 대가 등만 넣은)만을 넣은 ‘메모’ 형식으로 작성한 후 쌍방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해도 좋다.

또한 작성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상대방 회사의 대표이사여야 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면 직접 거래상대방(실무자)로부터라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4)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이 말은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아예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결국 해당 부분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때, 법원은 그 계약의 내용을 ‘만화가는 대가를 받고, 출판사는 만화가의 만화를 사용하여 출판, 연재를 하는’ 정도의 내용으로 판단할 것이다.

필자가 살펴본 계약서들 상당수가 출판, 연재의 범위를 넘어 ‘권리 양도’ 등의 내용을 갖고 있음을 볼 때, 아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작가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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