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27) - 사진 자료의 참조>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우리가 만화를 그릴 때 어떤 자료도 참조하지 않고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기존에 나와 있는 시각적 저작물, 그 중에서도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만화를 그리면서 “이런 식으로 만화를 그리는 경우 사진의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보셨나요? 우리가 그린 만화를 누가 베끼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흥분하지만, 다른 사람이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찍은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겠지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만화 “슬램덩크”의 일부 컷, 표지 그림 등이 미국 NBA 화보집을 모방한 것이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지금은 일본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관련 정보가 없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건 해결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와 같은 경우 일정 범위 하에서는 사진의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2. 우선, 저작권 침해가 되는가?

 

마치 소설을 보고, 그 줄거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되듯이, 또한 만화를 보고, 그 내용을 그대로 이용하여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되듯이, 타인의 사진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우 저작권 침해가 됩니다.

만약 타인의 사진을 거의 똑같이 그림으로 그리는 경우에는 저작권 중 “복제권” 침해가 됩니다만, 보통의 경우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될 것입니다. 즉 우리 저작권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원저작물을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저작물”을 2차적저작물로 규정하고, 같은 법 제22조에서는 저작권자가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갖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2차적저작물의 요건으로는 (i) 원저작물을 기초로 할 것, (ii) 실질적인 개변(변경)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 즉, (i)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하여 이것에 새로운 창작성을 가한 것으로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경우에는 전혀 별개의 저작물입니다. (ii) 다른 한편, 원저작물(기존의 저작물)에 실질적인 변경을 가할 정도로 수정을 한 것이 아니라 다소의 수정, 증감만을 한 경우에는 원저작물의 복제물에 불과할 뿐, 2차적저작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원저작물의 복제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결국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3. 어떤 경우 침해가 되지 않을까?

 

 

가. 사진저작물의 특성상 한계

 

사진 저작물이라는 것은 다른 시각적 저작물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작가의 의식적인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회화, 판화, 조각 등과는 달리,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피사체를 기계적, 화학적 방법에 의하여 재현하는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각적 저작물과 구별되는바, 예를 들어 "증명사진" 내지 "제품사진"과 같이 기계적 방법으로 다만 피사체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경우에는 저작물의 요건인 “창작성(creativity)”이 없으므로 저작물성을 부인할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 또한 사진의 저작물성이 문제된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사진들을 ① 햄제품 자체를 촬영한 "제품사진"과 ② 햄 제품을 다른 장식물, 과일 등 사물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진인 "이미지사진"으로 나누어 "제품사진"에 대해서는 "제품사진은 비록 광고사진작가인 원고의 기술에 의하여 촬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은 그 피사체인 햄제품 자체만을 충실하게 표현하여 광고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이때 그와 같은 목적에 부응하기 위하여 그 분야의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원고의 사진기술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며… 위와 같은 제품사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피사체를 충실하게 표현하였나 하는 사진 기술적인 문제이고, 그 표현하는 방법이나 표현에 있어서의 창작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니, 비록 거기에 원고의 창작이 전혀 개재되어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와 같은 창작의 정도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할 만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였지만, 한편, "이미지사진"에 대해서는 저작물성을 인정하여 침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긍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01. 5. 8. 선고 98다43366 판결).

 

쉽게 설명해서, 카메라 앵글을 잡고, 조명을 생각하는 등 정성을 들여 멋지게 찍은 사진은 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현재 존재하는 피사체를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은 저작물성이 부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계적 방법으로 다만 피사체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 그친 사진”의 경우에는 아예 사진의 저작물성이 부인되므로, 이를 참고하거나 베껴서 만화를 그린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이에 해당하느냐는 개별 사안별로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찍은 사진을 만화에 사용한다고 할 때, 보통 사람이 자신이 갖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로 밝은 날 자동 셔터를 이용해 찍은 사진은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저명한 사진 작가가 노출과 셔터 속도에 신경을 써가며 고급 카메라를 이용하여 하이 앵글로 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찍은 사진은 저작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터이니, 후자를 만화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고, 전자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겠지요.

 

 

나. 2차적저작물의 성격상 한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진을 보고 그린 만화는 사진의 2차적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경우에는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양 시각적 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의 판단은 어렵고도 복잡한 주제이므로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는 “양 저작물의 전체적인 느낌과 관념이 비슷한가”, 즉 통상의 사람이 만화를 보고 원작 사진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 자체에 원작 사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수차 살펴본 대로, 저작권 침해는 “표현”에서 문제가 될 뿐이지 “아이디어”는 문제되지 않으므로, 사진에서 단지 아이디어만을 얻어 만화를 그리는 것 또한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사진을 참작하여 만화를 그리는 경우에, 제3자가 보아 “이 만화, 사진 보고 그린 거네”라는 정도가 아니라면, 또한 사진에서 단지 아이디어만을 얻어 만화를 그린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4. 결론

 

조금 개그 같은 이야기지만, 사진 작가의 허락을 받아서 만화를 그리는 데 사진을 사용하거나, 자기가 찍은 사진을 만화에 그리는 데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겠습니다(^^;)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좋은 만화에서 사진자료는 빼뜨릴 수 없는 도구이자 원천이겠지요. 하지만 사진에도 엄연히 이를 찍은 사람의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사진을 충분히, 잘 사용하시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지 방법으로 현명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