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29) - 만화연재계약의 해석>

 

  변호사 이영욱

 

 

1. 들어가면서

만화가들은 자신의 만화를 잡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신문 등 특정 매체(이하 “매체사”라고 합니다)에 연재할 기회를 갖습니다.

만화연재를 둘러싼 많은 법적 의문점이 있고, 실제로 그런 문제에 닥치기도 합니다; 연재를 하면 꼭 그 매체사(예를 들면 출판사, 신문사)에서 단행본 출판도 해야 하는 걸까요? 그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한번 주면 만화를 한번 연재한 다음에도 두 번, 세 번 연재할 수 있는 걸까요? 만화가 히트를 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3자가 나타나면, 만화가는 매체사의 허락을 받고 계약을 해야 할까요, 계약을 했다면 매체사와 그 수익을 나눠야 할까요?

만약 만화가와 매체사 사이에 연재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위와 같은 문제들은 계약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계약서의 속성상 모든 발생 가능한 경우를 다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항 위주로 간략하게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역시 계약 해석의 문제가 남게 되고, 많은 경우에는 심지어 연재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이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부터 출발하여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만, 본 원고에서는 위와 같은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과 그에 따라 여러 문제 상황들의 잠정적인 답을 한번 구성해 보겠습니다.

 

2.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

 

(1) 우선 만화연재계약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제되는바, 우리 대법원은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특히 당사자 일방이 주장하는 계약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3.14. 선고 2007다11996 판결 등).

 

이에 따라서, 계약서상 해당 사항에 대한 조항이 명백한 경우에는 이에 따라서 해결을 하면 됩니다(물론, 이 경우에도 계약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한다거나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면 해당 부분은 무효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모두 살펴보기는 힘들겠습니다). 조항의 문언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또는 아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는 우선 연재 계약 또한 출판 계약 내지 이에 준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기존의 출판계약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위 대법원 판례에서 살펴본 대로, 계약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진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해서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여러모로 종합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출판계약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전 만화가의 권리찾기 11회에서 살펴본 바 있는바, 크게 분류하면 (i) 저작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판자에게 양도하는 ‘저작재산권 양도계약’(물권적 성격), (ii) 저작권자가 출판을 허락하고,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 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출판허락계약’(채권적 성격), (iii) 출판권의 설정을 목적으로 하는 준물권계약인 ‘출판권설정계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출판권설정계약’이라는 것은 출판자가 설정계약에 기해 출판권 등록을 해야 하는 계약이므로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고, 통상 출판계약이라는 것은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출판사에게 일정 기간을 정해서 출판을 허락하는 내용이니 만큼, 우리 판례도 보통 채권적 성격인 ‘출판허락계약’으로 보고, 저작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저작권 양도계약‘은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저작권 양도를 받은 경우에는, 양수인이 저작권자와 거의 똑같이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 또는 계약서가 모호한 경우라면 “만화연재계약” 또한 만화가가 출판자에 대하여 출판을 허락하고, 이에 대하여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 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출판허락계약’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고, 다만 당사자의 의사와 거래의 관행상, 그러한 연재는 매체에 1회 연재하거나 인터넷에 일정 기간 연재하는 계약이되, 동시에 다른 매체에는 게재하지 아니하는 독점적 계약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을 양도받지 않은 채권적 권리자인 출판자(매체사)는 그 이상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 것입니다.

 

3. 여러 가지 의문점들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

 

(1) 연재를 하면 꼭 그 매체사(예를 들면 출판사, 신문사)에서 단행본 출판도 해야 하는 걸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연재계약은 해당 매체사에서 1회 연재할 수 있는 권리만을 주는 계약입니다. 따라서 만화가는 꼭 그 매체사에서 단행본을 출판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만약 해당 매체사에서 만화가가 연재한 만화의 단행본을 출판하고자 한다면 별도의 계약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한번 주면 만화를 두 번, 세 번 연재할 수 있는 걸까?

통상 계약당사자의 의사 또는 업계의 관행상(기존 만화잡지 연재 관행 등을 고려해볼 때) 만화연재계약은 매체에 1회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이고, 해당 매체사는 그러한 1회 게재의 대가로 만화가에게 고료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매체사에서 만화를 2회, 3회 연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3)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지면 연재의 원고료를 주면 인터넷에는 무료로 연재할 수 있는 걸까?

원칙적으로 인쇄 매체사가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준 것은 인쇄매체(신문, 잡지 등) 연재의 원고료이기 때문에, 추가로 대가를 주지 않고 인터넷에 연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계약 당사자의 의사 또는 업계의 관행이 해당 원고료로써 인터넷 연재의 대가를 포함하는 것인지가 문제될 것인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4) 매체사가 인터넷에 만화를 영구 무한정하게 게시하는 것도 가능할까?

이 문제는 근래 발생하는 이슈이므로 관행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연재계약은 채권적 계약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매체사의 권리도 원칙적으로 10년의 시효에 걸리고(민법 제162조 제1항), 더군다나 출판권은 특약이 없으면 맨 처음 출판한 날로부터 3년간 존속하는바(저작권법 제60조 제1항), 위와 같은 점과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해볼 때, 3년 보다는 짧은 정해진 기간에 한하여 게시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5) 만화가는 A 매체사에 연재를 하면서 이를 B 매체사에서 동시에 연재를 하거나 출판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출판계약은 출판자에게 “독점적” 출판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거래 관행이나 계약 당사자의 의사 또한 계약 기간 동안 출판자(매체사)에게 독점적 게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A 매체사 연재와 동시에 B 매체사에 연재를 하거나 출판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6) 연재를 마친 원고를 만화가가 다른 곳에 다시 연재하고 싶으면 원래 연재한 곳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할까?

매체사는 만화가와의 연재 계약 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연재할 권리를 가질 뿐이고 만화가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므로, 만화가는 연재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온건한 저작권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여, 다른 매체에 자유롭게 연재할 수 있습니다-즉,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7) 만화가 히트를 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3자가 나타나면, 만화가는 매체사의 허락을 받아야 할까? 그 경우 만화가는 매체사와 그 수익을 나눠야 할까?

매체사는 단지 계약 기간 동안 만화를 연재할 권리를 가질 뿐이므로,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제3자와의 계약에 대해 매체사의 허락을 받거나, 매체사와 수익을 나눠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일정 부분 양도받거나 그 수익을 나눠 갖는 식의 계약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은 이미 연재한 만화가의 권리찾기 11회, 12회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4. 결론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다 보면, 역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계약서입니다.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을 법원이 효력을 부정하거나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 상담을 하러 오는 많은 경우에, 이미 계약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하게 작성된 경우도 많더군요).

나름대로 저의 법적 지식과 기존의 판례, 학설로써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잠정적인, 조금은 용감한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실무적으로는 계약서의 미묘한 문언과 해당 계약을 둘러싼 당사자의 의사, 당시의 사정 등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은바,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중요한 계약서를 작성하려 할 때는 항상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작성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는 첩경이라는 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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