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29) - 만화연재계약의 해석>

 

  변호사 이영욱

 

 

1. 들어가면서

만화가들은 자신의 만화를 잡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신문 등 특정 매체(이하 “매체사”라고 합니다)에 연재할 기회를 갖습니다.

만화연재를 둘러싼 많은 법적 의문점이 있고, 실제로 그런 문제에 닥치기도 합니다; 연재를 하면 꼭 그 매체사(예를 들면 출판사, 신문사)에서 단행본 출판도 해야 하는 걸까요? 그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한번 주면 만화를 한번 연재한 다음에도 두 번, 세 번 연재할 수 있는 걸까요? 만화가 히트를 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3자가 나타나면, 만화가는 매체사의 허락을 받고 계약을 해야 할까요, 계약을 했다면 매체사와 그 수익을 나눠야 할까요?

만약 만화가와 매체사 사이에 연재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위와 같은 문제들은 계약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계약서의 속성상 모든 발생 가능한 경우를 다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항 위주로 간략하게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역시 계약 해석의 문제가 남게 되고, 많은 경우에는 심지어 연재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이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부터 출발하여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만, 본 원고에서는 위와 같은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과 그에 따라 여러 문제 상황들의 잠정적인 답을 한번 구성해 보겠습니다.

 

2. 만화연재계약의 법적 성격

 

(1) 우선 만화연재계약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제되는바, 우리 대법원은 “계약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특히 당사자 일방이 주장하는 계약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중대한 책임을 부과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3.14. 선고 2007다11996 판결 등).

 

이에 따라서, 계약서상 해당 사항에 대한 조항이 명백한 경우에는 이에 따라서 해결을 하면 됩니다(물론, 이 경우에도 계약 자체가 사회질서에 반한다거나 불공정한 법률행위라면 해당 부분은 무효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모두 살펴보기는 힘들겠습니다). 조항의 문언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또는 아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는 우선 연재 계약 또한 출판 계약 내지 이에 준하는 계약이기 때문에 기존의 출판계약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위 대법원 판례에서 살펴본 대로, 계약 문언의 내용과 계약이 이루어진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해서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여러모로 종합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출판계약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전 만화가의 권리찾기 11회에서 살펴본 바 있는바, 크게 분류하면 (i) 저작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판자에게 양도하는 ‘저작재산권 양도계약’(물권적 성격), (ii) 저작권자가 출판을 허락하고,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 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출판허락계약’(채권적 성격), (iii) 출판권의 설정을 목적으로 하는 준물권계약인 ‘출판권설정계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출판권설정계약’이라는 것은 출판자가 설정계약에 기해 출판권 등록을 해야 하는 계약이므로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고, 통상 출판계약이라는 것은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출판사에게 일정 기간을 정해서 출판을 허락하는 내용이니 만큼, 우리 판례도 보통 채권적 성격인 ‘출판허락계약’으로 보고, 저작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저작권 양도계약‘은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저작권 양도를 받은 경우에는, 양수인이 저작권자와 거의 똑같이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 또는 계약서가 모호한 경우라면 “만화연재계약” 또한 만화가가 출판자에 대하여 출판을 허락하고, 이에 대하여 출판자는 자기의 계산으로 복제, 배포할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는 ‘출판허락계약’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고, 다만 당사자의 의사와 거래의 관행상, 그러한 연재는 매체에 1회 연재하거나 인터넷에 일정 기간 연재하는 계약이되, 동시에 다른 매체에는 게재하지 아니하는 독점적 계약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을 양도받지 않은 채권적 권리자인 출판자(매체사)는 그 이상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 것입니다.

 

3. 여러 가지 의문점들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

 

(1) 연재를 하면 꼭 그 매체사(예를 들면 출판사, 신문사)에서 단행본 출판도 해야 하는 걸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연재계약은 해당 매체사에서 1회 연재할 수 있는 권리만을 주는 계약입니다. 따라서 만화가는 꼭 그 매체사에서 단행본을 출판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만약 해당 매체사에서 만화가가 연재한 만화의 단행본을 출판하고자 한다면 별도의 계약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한번 주면 만화를 두 번, 세 번 연재할 수 있는 걸까?

통상 계약당사자의 의사 또는 업계의 관행상(기존 만화잡지 연재 관행 등을 고려해볼 때) 만화연재계약은 매체에 1회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이고, 해당 매체사는 그러한 1회 게재의 대가로 만화가에게 고료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매체사에서 만화를 2회, 3회 연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3) 매체사는 만화가에게 지면 연재의 원고료를 주면 인터넷에는 무료로 연재할 수 있는 걸까?

원칙적으로 인쇄 매체사가 만화가에게 원고료를 준 것은 인쇄매체(신문, 잡지 등) 연재의 원고료이기 때문에, 추가로 대가를 주지 않고 인터넷에 연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계약 당사자의 의사 또는 업계의 관행이 해당 원고료로써 인터넷 연재의 대가를 포함하는 것인지가 문제될 것인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4) 매체사가 인터넷에 만화를 영구 무한정하게 게시하는 것도 가능할까?

이 문제는 근래 발생하는 이슈이므로 관행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화연재계약은 채권적 계약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매체사의 권리도 원칙적으로 10년의 시효에 걸리고(민법 제162조 제1항), 더군다나 출판권은 특약이 없으면 맨 처음 출판한 날로부터 3년간 존속하는바(저작권법 제60조 제1항), 위와 같은 점과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해볼 때, 3년 보다는 짧은 정해진 기간에 한하여 게시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5) 만화가는 A 매체사에 연재를 하면서 이를 B 매체사에서 동시에 연재를 하거나 출판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출판계약은 출판자에게 “독점적” 출판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거래 관행이나 계약 당사자의 의사 또한 계약 기간 동안 출판자(매체사)에게 독점적 게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A 매체사 연재와 동시에 B 매체사에 연재를 하거나 출판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6) 연재를 마친 원고를 만화가가 다른 곳에 다시 연재하고 싶으면 원래 연재한 곳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할까?

매체사는 만화가와의 연재 계약 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연재할 권리를 가질 뿐이고 만화가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므로, 만화가는 연재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온건한 저작권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여, 다른 매체에 자유롭게 연재할 수 있습니다-즉,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7) 만화가 히트를 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겠다는 제3자가 나타나면, 만화가는 매체사의 허락을 받아야 할까? 그 경우 만화가는 매체사와 그 수익을 나눠야 할까?

매체사는 단지 계약 기간 동안 만화를 연재할 권리를 가질 뿐이므로,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제3자와의 계약에 대해 매체사의 허락을 받거나, 매체사와 수익을 나눠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일정 부분 양도받거나 그 수익을 나눠 갖는 식의 계약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은 이미 연재한 만화가의 권리찾기 11회, 12회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4. 결론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다 보면, 역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계약서입니다.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을 법원이 효력을 부정하거나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에게 상담을 하러 오는 많은 경우에, 이미 계약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하게 작성된 경우도 많더군요).

나름대로 저의 법적 지식과 기존의 판례, 학설로써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잠정적인, 조금은 용감한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실무적으로는 계약서의 미묘한 문언과 해당 계약을 둘러싼 당사자의 의사, 당시의 사정 등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은바,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서의 문구 하나하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중요한 계약서를 작성하려 할 때는 항상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작성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는 첩경이라는 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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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권리찾기(28) - 만화의 문학작품에 대한 저작권 침해>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만화를 둘러싼 최근 저작권법적 쟁점 하나가 만화와 다른 장르의 예술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따른 현상 아닌가 싶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실제로 만화와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게임 사이에는 (i) 만화가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게임의 저작권 등을 침해했다고 문제가 되기도 하고, (ii) 거꾸로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게임이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 살펴볼 판례는 만화가 문학작품(논픽션) 저작권 침해를 하였다고 문제가 사안인데, 만화와 관련된 분쟁으로는 거의 최초 사안이 아닐까 합니다(서울지방법원 1996. 9. 6. 선고  95가합72771 판결, 서울고등법원 1997. 7. 22. 선고 9641016 판결(확정)).   

 

2. 사실관계

 

원고(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람) 유럽에서 11년간 카레이서로 활동하여 사람으로서, 1987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리-다카르 랠리' 참가하여 완주한 다음, 22일간의 자동차 경주에서의 경험과 원고의 사상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하여, 1988 '사하라 일기'라는 제명으로 출판사를 통하여 발행하였다.

 

피고(소제기를 당한 사람) 만화가로서, 만화 주인공인 A 한국자동차 산업을 발전시켜 일본의 혼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누르고 세계 자동차시장을 석권한다는 내용으로 'B'라는 제명의 만화를 일간신문에 연재한 다음, 무렵 출판사를 통하여 만화를 12권으로 엮어 출판하였다.

 

원고는, 피고가 사건 만화를 집필하면서 국내 최초로 파리-다카르 랠리를 완주한 교포 카레이서인 원고를 사건 만화의 등장인물인 카레이서의 캐릭터로 사용하고, 원고가 방송 등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내용을 무단 인용하여 원고의 성명 또는 초상권을 침해하였으며, 또한 원고는 자신의 경험 등을 만화 또는 영화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피고가 사건 만화를 제작함으로써 이를 중단하게 되었는바 이는 상업적 이용 또는 공표권(right of publicity) 침해한 것이고, 자신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3. 판례의 내용

 

(1) 손해배상책임의 근거에 대하여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하여는 침해자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과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야 것인데, 실질적 유사성에는 작품 속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함으로써 전체로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 작품 속의 특정한 행이나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저작물 사이에 문장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 있다고 것인바, 앞에서 인정한 사실에 터잡아 원고의 '사하라 일기' 피고의 사건 만화를 비교해 보면, 원고의 '사하라 일기' 사건 만화 사이에는 표현형식, 주제, 구성에 있어서는 전체적인 개념과 느낌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인정되나, 구성요소 일부 사건, 대화, 사상의 표현에 있어서 공정한 인용 내지 양적 소량의 범위를 넘어서서 원고의 '사하라일기' 동일성이 인정되고,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도 인정되는 이상, 피고의 사건 만화의 일부는 원고의 '사하라 일기' 의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비록 원고의 '사하라 일기' 일부라고 할지라도 본질적인 부분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고, 이른바 통상적인 아이디어(idea) 영역을 넘어서 '사하라 일기' 구체적, 경험적 표현을 무단이용하였다고 보이므로 원고의 '사하라 일기'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고 것이다(1).

 

(2)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하여

 

먼저 침해의 범위에 관하여 보면, 앞에 증거에 의하면 피고가 집필한 사건 만화 원고의 ‘사하라일기’와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있는 부분은 만화 1,800페이지 10페이지 정도인 사실을 인정할 있으나,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파리-다카르 랠리 참가 부분이, 주인공인 A 국산자동차를 개발한 다음 랠리에 참가시켜 완주함으로써 우수성을 입증하여 국내 자동차시장을 석권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사건 만화의 1권부터 3권까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만화에 의한 원고의 저작권의 침해 범위는 만화의 10% 정도라고 봄이 상당하다.

나아가 피고가 배상하여야 재산상 손해액에 관하여 보면, 저작권의 침해로 인한 원고의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저작권을 침해한 사건 만화의 발행 부수에 따르는 인세 상당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것인데, 앞에 ...(증거를) 합쳐보면, 사건 만화의 가격은 1권당 4,000원인 사실, 1심공동피고 출판사는 만화를 100,000 출판한 사실, 피고는 사건 만화에 대한 인세로 만화 1권당 만화가격의 10% 정도를 받은 사실을 인정할 있고, ...달리 반증이 없으므로, 원고가 입은 재산상 손해액은 24,000,000{100,000 x 24,000(=4,000 x 6) x 10% x 10%} 된다.(고등법원)

 

4. 판례의 검토

 

우리가 누차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작권 침해는 “아이디어는 문제되지 않고, 표현이 문제됩니다.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1) 타인이 저작한 원저작물에 의하여 침해 저작물을 만들었을 (의거성), (2) 침해 저작물이 원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할 (실질적 유사성) 요건이 필요한 , 전자(의거성) 보고 베끼는 모습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아 접근할 기회가 있었다면(예컨대 원저작물이 널리 공표되었다거나 간행되었다면) 대부분 이를 추정합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실질적 유사성)인데, 표현의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함에 있어 판례는 “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을 나누어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저작권 침해 판단을 하고 있는바,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정말로 보고 베끼지 않을 정도로 똑같을 정도로(심지어 오류 부분까지 똑같다면)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이 인정된다면, 비교적 쉽게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또한 판례에서는 손해배상의 계산 과정이 나타나는데요, 통상 출판물의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액은 “인세”로 계산해서 인정합니다. 계산 방법은 “손해배상액=인세*저작물 저작권 침해 부분의 비중”으로 계산합니다. 사안에서는 인세를 소매가의 10%, 저작권 침해 부분의 비중을 전체 만화 10% 계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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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권리찾기(27) - 사진 자료의 참조>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우리가 만화를 그릴 때 어떤 자료도 참조하지 않고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기존에 나와 있는 시각적 저작물, 그 중에서도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만화를 그리면서 “이런 식으로 만화를 그리는 경우 사진의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보셨나요? 우리가 그린 만화를 누가 베끼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흥분하지만, 다른 사람이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찍은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겠지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만화 “슬램덩크”의 일부 컷, 표지 그림 등이 미국 NBA 화보집을 모방한 것이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지금은 일본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관련 정보가 없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건 해결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와 같은 경우 일정 범위 하에서는 사진의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2. 우선, 저작권 침해가 되는가?

 

마치 소설을 보고, 그 줄거리를 그대로 이용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되듯이, 또한 만화를 보고, 그 내용을 그대로 이용하여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저작권 침해가 되듯이, 타인의 사진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우 저작권 침해가 됩니다.

만약 타인의 사진을 거의 똑같이 그림으로 그리는 경우에는 저작권 중 “복제권” 침해가 됩니다만, 보통의 경우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될 것입니다. 즉 우리 저작권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원저작물을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저작물”을 2차적저작물로 규정하고, 같은 법 제22조에서는 저작권자가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갖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2차적저작물의 요건으로는 (i) 원저작물을 기초로 할 것, (ii) 실질적인 개변(변경)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 즉, (i)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하여 이것에 새로운 창작성을 가한 것으로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고, 이러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경우에는 전혀 별개의 저작물입니다. (ii) 다른 한편, 원저작물(기존의 저작물)에 실질적인 변경을 가할 정도로 수정을 한 것이 아니라 다소의 수정, 증감만을 한 경우에는 원저작물의 복제물에 불과할 뿐, 2차적저작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원저작물의 복제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결국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3. 어떤 경우 침해가 되지 않을까?

 

 

가. 사진저작물의 특성상 한계

 

사진 저작물이라는 것은 다른 시각적 저작물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작가의 의식적인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회화, 판화, 조각 등과는 달리,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피사체를 기계적, 화학적 방법에 의하여 재현하는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시각적 저작물과 구별되는바, 예를 들어 "증명사진" 내지 "제품사진"과 같이 기계적 방법으로 다만 피사체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경우에는 저작물의 요건인 “창작성(creativity)”이 없으므로 저작물성을 부인할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 또한 사진의 저작물성이 문제된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사진들을 ① 햄제품 자체를 촬영한 "제품사진"과 ② 햄 제품을 다른 장식물, 과일 등 사물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제품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진인 "이미지사진"으로 나누어 "제품사진"에 대해서는 "제품사진은 비록 광고사진작가인 원고의 기술에 의하여 촬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은 그 피사체인 햄제품 자체만을 충실하게 표현하여 광고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이때 그와 같은 목적에 부응하기 위하여 그 분야의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원고의 사진기술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며… 위와 같은 제품사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피사체를 충실하게 표현하였나 하는 사진 기술적인 문제이고, 그 표현하는 방법이나 표현에 있어서의 창작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니, 비록 거기에 원고의 창작이 전혀 개재되어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와 같은 창작의 정도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할 만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하였지만, 한편, "이미지사진"에 대해서는 저작물성을 인정하여 침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긍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01. 5. 8. 선고 98다43366 판결).

 

쉽게 설명해서, 카메라 앵글을 잡고, 조명을 생각하는 등 정성을 들여 멋지게 찍은 사진은 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현재 존재하는 피사체를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은 저작물성이 부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계적 방법으로 다만 피사체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데 그친 사진”의 경우에는 아예 사진의 저작물성이 부인되므로, 이를 참고하거나 베껴서 만화를 그린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이에 해당하느냐는 개별 사안별로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찍은 사진을 만화에 사용한다고 할 때, 보통 사람이 자신이 갖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로 밝은 날 자동 셔터를 이용해 찍은 사진은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저명한 사진 작가가 노출과 셔터 속도에 신경을 써가며 고급 카메라를 이용하여 하이 앵글로 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찍은 사진은 저작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터이니, 후자를 만화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고, 전자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겠지요.

 

 

나. 2차적저작물의 성격상 한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진을 보고 그린 만화는 사진의 2차적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을 토대로 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경우에는 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양 시각적 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의 판단은 어렵고도 복잡한 주제이므로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는 “양 저작물의 전체적인 느낌과 관념이 비슷한가”, 즉 통상의 사람이 만화를 보고 원작 사진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 자체에 원작 사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수차 살펴본 대로, 저작권 침해는 “표현”에서 문제가 될 뿐이지 “아이디어”는 문제되지 않으므로, 사진에서 단지 아이디어만을 얻어 만화를 그리는 것 또한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사진을 참작하여 만화를 그리는 경우에, 제3자가 보아 “이 만화, 사진 보고 그린 거네”라는 정도가 아니라면, 또한 사진에서 단지 아이디어만을 얻어 만화를 그린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4. 결론

 

조금 개그 같은 이야기지만, 사진 작가의 허락을 받아서 만화를 그리는 데 사진을 사용하거나, 자기가 찍은 사진을 만화에 그리는 데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겠습니다(^^;)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좋은 만화에서 사진자료는 빼뜨릴 수 없는 도구이자 원천이겠지요. 하지만 사진에도 엄연히 이를 찍은 사람의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사진을 충분히, 잘 사용하시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지 방법으로 현명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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