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권리찾기(32) - “하얀나라 까만나라” 사건>

 

이영욱(변호사)


 

1. 들어가면서

이번 회에서는 만화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저작권 침해에 관하여 우리나라에 선도적 판례로서 의미가 있는 사건을 살펴봅니다.
본 사건은 검사생활을 마치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원고가 자신의 검사 및 변호사로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하얀나라 까만나라”라는 소설을 집필하였는데, 피고인 방송작가가 쓴 드라마 방송대본이 소설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본 사건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방송작가의 저작권침해가 인정된다면, 그 방송대본을 갖고 드라마를 만들어 방송한 피고인 방송사(다만, 사안에서는 “방송사”와 “방송국 소속 제작사”가 등장하지만, 간단하게 이를 모두 방송사로 다루었습니다)의 저작권 침해도 인정될 것인가라는 쟁점이 다루어졌습니다(서울고등법원 1995.10.19. 선고  95나18736 판결, 대법원 1996. 6.11. 선고  95다49639 판결).
즉, 원고는 소설을 쓴 변호사이고, 피고는 방송작가(피고 작가)와 방송사(피고 방송사) 둘입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임관하여 6년간 검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하여 개업을 한 변호사로서, 그 동안의 자신의 검사 및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소재로 젊은 법조인이 검사 및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겪게 되는 고민과 갈등을 집필하여 "하얀나라 까만나라"라는 소설을 발행하였습니다.
피고 작가는 피고 방송사로부터 주말연속극 "연인"의 방송대본집필을 의뢰받고 검사, 변호사, 기자, 서양화가 등 2, 30대 연령층의 전문직업인들의 일과 사랑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구성하는 내용으로 50회분의 대본을 집필하였습니다.

원고의 소설은 30대의 젊은 주인공이 검사 및 변호사라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 소설로서 소설에는 주인공이 검사로서 피의자 등과 업무상 만나면서 그 사건 처리과정에서 일어나는 조직 내부의 업무처리에 관한 사실적 표현과 변호사로서 개업하여 피의자나 소송의뢰인들과 접하면서 사건을 수임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관한 사실적 표현이 그 주요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연인"이라는 연속극의 대본 중에도 검사 및 변호사로 나오는 등장인물이 각 수사하거나 수임하여 처리하는 사건에 관한 구체적, 사실적 표현 및 위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 중에는 예컨대, 원고의 소설에 나오는 변호사가 맡게 되는 첫 사건과 피고의 대본상의 주인공인 변호사가 맡게 되는 첫 사건, 원고의 소설에 나오는 검사와 피고의 대본상의 주인공인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하는 사건내용이 각 주거침입절도죄로 동일하고 처분을 하게 되는 경위도 동일하며, 소설에서 나오는 "77고합1024호 강도치사"의 사건번호를 방송대본에서 그대로 이용하는 등의 동일 또는 유사점이 있었습니다.
 
3. 저작권침해 여부 및 판단기준에 관하여(고등법원 설시 중)

 

(1) “이른바 어문저작물 중 소설, 극본, 시나리오 등과 같은 저작물은 등장인물과 작품의 전개과정(이른바 sequence)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작품의 전개과정은 아이디어(idea), 주제(theme), 구성(plot), 사건(incident), 대화와 어투(dialogue and language)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러한 각 구성요소 중 각 저작물에 특이한 사건이나 대화 또는 어투는 그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다).”

 

(2)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하여서는 침해자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을 것과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야 할 것인데, 실질적 유사성에는 작품속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함으로써 전체로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comprehensive nonliteral similarity)와 작품속의 특정한 행이나 절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양저작물 사이에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이른바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fragmented literal similarity)가 있다고 할 것(이다).”

 

(3) “...원고의 소설과 피고의 "연인"이라는 연속극의 대본을 비교해 보면, 원고의 소설과 위 피고의 대본 사이에는 소설과 대본이라는 표현형식, 그 주제 및 구성에 있어서는 전체적인 개념과 느낌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이 인정되나 그 구성요소 중 일부 사건 및 대화와 어투에 있어서 공정한 인용 내지 양적 소량의 범위를 넘어서서 원고의 이 사건 소설과 동일성이 인정되고, 부분적 문자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이상, 위 피고의 "연인"이라는 연속극의 대본의 일부는 원고의 이 사건 소설의 존재를 알고 이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비록 원고의 이 사건 소설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부분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고 이른바 통상적인 아이디어(idea)의 영역을 넘어서 위 소설의 경험적, 구체적 표현을 무단이용하였다고 보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소설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고 할 것이다.”

 

(4) 법원은 위와 같이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의 두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면서, “실질적 유사성”은 작품속의 특정한 행이나 절 또는 기타 세부적인 부분이 복제됨으로써 양 저작물 사이에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되는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부분적 문자적 유사성) 뿐 아니라 전체로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포괄적 비문자적 유사성)도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실질적 유사성은 반드시 문언, 표현 하나하나가 똑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근본적인 본질 또는 구조를 복제하는 경우에도 저작권침해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4. 방송사의 책임에 대하여(고등법원 설시 중)

 

(1) 원고의 주장: “원고는 ...피고 방송사는 피고 작가가 대본을 집필한 드라마 "연인"을 기획하고, 제작함에 있어서, 원고의 소설이 국내일간신문에 소개되는 등으로 피고 방송사는 피고 작가의 대본이 원고의 이 사건 저작권을 침해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 대본을 감독, 심의할 주의의무를 위배하여 그대로 드라마로 방영함으로써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 작가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고가 입은 손해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2) “그러므로 피고 방송사가 피고 작가의 저작권 침해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위 대본을 감독, 심의할 주의의무를 위배하였는가의 여부를 살피건대, 이를 인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고, 오히려 (증거)에 의하면 피고 방송사는 1993. 2. 12.경 새주말연속극을 기획함에 있어서 관계자들의 기획안과 이야기 줄거리(시높시스)를 검토하여 "연인"이라는 제목의 연속극을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피고 방송사는 위 연속극의 작가로 피고 작가와 대본집필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위 계약체결시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계약사항에 명기한 사실, 일반적인 드라마제작은 작가가 이야기 줄거리를 완성하여 피고 방송사의 승인을 얻으면 그 때부터 작가는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하고 대본이 완성되면 그 대본에 대하여 피고 방송사가 심의를 하는데, 그 심의대상은 통상 대본의 내용이 방송에 적합한 지 여부에 국한되고 대본의 줄거리나 내용 등은 작가의 책임과 재량에 맡겨져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3)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방송사와 피고 작가의 사이에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상 피고 작가의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하여 피고 방송사가 특별한 주의, 감독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달리 피고 방송사가 원고의 저작권침해를 방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태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위 피고들에 대한 원고의 위 청구는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4) 법원은 위와 같이 설시하여, 방송작가가 만든 드라마는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만, 이를 제작, 방송한 방송사의 저작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5. 판례에 대하여

 

본 사안은 1995년경 사건인데, 위 사건의 원고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님이십니다. 인품과 법률 지식도 훌륭하신 분인데, 당시 사회 일반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너무 없고, 또한 방송국에서 너무 안일하게 저작권 문제를 생각하는 것 같아 소송을 제기하셨다고 합니다(결국 방송국에 대한 소송은 지긴 했지만, 사실관계에 따라 방송국의 책임도 충분히 인정될 만한 사안입니다).
위 사건에서 재미있는 것은 원고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 번호(77고합1024호 강도치사)는 원고가 만든 가공의 사건번호인데, 피고 작가가 그것을 그대로 베껴 썼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 양 저작물에 남달리 똑같은 점이 나타나면, 침해가 비교적 쉽게 인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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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권리찾기(31) - “두근두근 체인지” 사건>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저작권법상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가 “표현은 보호되고, 아이디어는 보호되지 않는다”라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 원리를 잘 모르면, 창작자들은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도 다른 저작물이 자신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즉, 타인의 저작물이 침해한 것은 자신 저작물의 “아이디어”일 뿐인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가 성립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작가들은 워낙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고, 저작물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저작권 범위를 넓게 보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위와 같은 원리를 몰라 실제로 저작권 침해가 문제되는 사건에서는 저작권자가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회에는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가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문제된 사안에서(대법원에서 확정) 이러한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 실제로 법원의 재판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를 한번 살펴봅니다.

 

2. 사실관계
신청인은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라는 만화(이하 “이 사건 만화”) 1, 2, 3권의 작가이고, 피신청인 A는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이하 “이 사건 드라마”)의 작가, 피신청인 B는 위 드라마의 프로듀서, 피신청인 C는 위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사입니다.
신청인은 위 만화를 2003년경부터 창작했는데(만화는 미완성인 상태에서 소 제기), 피신청인 C가 2004. 5.부터 2004. 8.까지 매주 일요일 공중파를 통해 위 드라마를 방송하자 위 드라마가 자신의 만화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피신청인들을 상대로 “영상저작물처분 및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습니다.
 
3. 1심의 판단(서울남부지방법원 2004카합2256)

 

(1) 의거관계
“먼저 이 사건 만화와 이 사건 드라마 사이에 의거관계가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보면, 이 사건 만화는 ...발행되었고, 인터넷 등을 통하여 그 내용이 대중에 알려져 있으며 ...그 소재, 사건의 전개방식 등에서 유사성이 발견되므로,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만화에 의거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저작된 것으로 보인다.”

 

(2) 실질적 유사성
“이 사건 만화는 변신 알약을 손에 넣게 된 못생긴 외모의 여고생 신동선이 변신약을 복용하여 미녀 새라로 변신하는 동안 친구인 ...등 주변 인물들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고, 한편 이 사건 드라마는 변신 샴푸를 우연히 사게 된 못생긴 외모의 여고생 모두가 샴푸를 이용하여 미녀 신비로 변신하는 동안 ... 주변 인물들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바, 결국 이 사건 드라마와 이 사건 만화는 모두 샴푸와 알약을 이용한 미녀로의 변신과 변신 이후에 일어나는 연예인과의 사귐 등 일련의 사건들을 공통의 소개 및 공통의 사건전개방식으로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유사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 만화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받던 여고생 신동선이 우연히 변신약을 손에 넣게 되어 미녀 새라로 변신, 친구들도 만들게 되고 연예인 연빈과도 사귀게 되지만, 이후 연빈에게 변신약의 비밀을 들키게 되어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연빈이 시키는 대로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이야기의 구성이 단조롭고 등장인물의 성격 등도 비교적 단순한데 반하여,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만화와 앞서 본 바와 같은 유사성이 있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 보다 다양하고 사건의 전개방식도 복잡하며, 이야기의 구성이나 인물의 심리묘사 등도 치밀하고, 극 전체의 완성도, 분위기 및 기법에 격차가 있는 등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사건 만화와는 그 예술성 및 창작성을 달리 하는 별개의 작품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만화와 이 사건 드라마가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종속적인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

 

(3) 1심은 위와 같이, 이 사건 드라마가 이 사건 만화에 의거하여 창작된 것은 맞지만, 양자에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4. 2심의 판단(서울고등법원 2005라194)

 

(1) 침해의 요건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것은 문학학술 또는 예술에 관한 사상감정을 말문자음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하는 창작적인 표현형식이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자체는 설사 그것이 신규성, 독창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가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하여야 한다(따라서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2) 실질적 유사성

“...두 저작물은 모두 변신을 소재로 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이성과 사랑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은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못생기고 뚱뚱한 여고생 주인공이 우연히 얻게 된 변신수단을 통해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하여 겪게 되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점, 못생겼으나 심성이 착하고 순수한 주인공 여고생, 주인공이 사랑하는 이상형의 남자, 주인공의 원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 등의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점, 주인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하여 인기와 사랑을 얻게 되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사건전개과정을 담고 있는 점 등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 사건 만화와 이 사건 드라마 사이의 공통적인 요소들은 못생긴 여자가 아름다운 외모로 변신하는 것을 소재로 한 데 따른 추상적인 유형과 관계에 해당하거나 전형적인 구성 혹은 통상적인 사건의 전개과정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어서 이러한 유사점만으로는 창작적인 표현형식이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사건 만화와 드라마는, 등장인물간 관계설정에 있어... 구성과 주제에 있어... 현저한 차이가 있다.
또한... 위 각 구성요소별로 두 저작물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보면, 우선 이 사건 드라마의 대사의 내용과 표현 중 이 사건 만화에 등장하는 표현을 문장 대 문장으로 대칭될 수 있을 정도로 그대로 베낀 부분이 있다거나 이 사건 드라마의 장면 중 이 사건 만화의 컷 내의 그림을 그대로 모방한 부분이 있어 두 작품 사이에 부분적 유사성이 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소명자료가 없으므로 결국 양자 사이에 주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줄거니나 구체적인 사건의 전개,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과 상호관계 등 사이에 포괄적인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바, 기록과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두 저작물의 성격과 유형, 줄거리,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호관계 등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저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가 이 사건 드라마의 창작적 형식에 해당함과 동시에 지배적인 특성을 이루고 있어 이 사건 드라마로부터 이 사건 만화의 본질적인 특징 자체를 감득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이하에서는 작품의 성격과 유형, 줄거리 및 사건의 전개, 등장인물에 대해서 구체적인 요소를 개별적으로 비교, 고찰)

“그렇다면 이 사건 만화와 드라마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드라마는 이 사건 만화와는 별개의 창작성 있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와 달리 볼 만한 소명자료가 없으므로 채권자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5. 결론
다소 길게 판례를 살펴보았습니다(실제로 저작권 침해 사건을 맡으면, 양자의 실질적 유사성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주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생각보다 지루한 경우가 많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그린 만화라는 것도 결국에는 이전에 누가 그렸던, 또는 누가 글을 썼던 내용을 다시 재가공해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완전 독창적인 작품이란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의 저작물로써 인정되는 저작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원저작물 자체의 존재 또한 부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고, 이러한 취지에서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은 위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불필요한 논쟁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베꼈느니 안 베꼈느니.. 그보다는 무엇을 베낀 것인가가 중요하겠죠. ^^;). 독자 여러분들도 이러한 저작권법상 기본원리를 정확히 알고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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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권리찾기(30) - 미키마우스 패러디 사건>

 

이영욱 변호사

 

 

1. 들어가면서

기존에 나왔던 유명 만화 등장인물을 이용하여 새로운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경우로 김수정 선생님의 “둘리”를 주인공으로 그린 최규석 작가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만화가 있죠. 실제로 동호회지에서는 기존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패러디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기존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고약한 만화를 그린 것을 보신 적이 있나요? 예를 들어서 기존의 밝고 명랑한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포르노 만화를 그린다거나 하는...

이번에 다루어 볼 미키마우스 패러디 사건(Walt Disney Productions v. Air Pirates)은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의 많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이들이 마약을 흡입하고 문란한 행동을 하는 만화를 그린 경우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2. 사건의 내용

원고 디즈니사는 여러 만화책의 저작권자인데, 위 만화에는 만화 주인공의 익살맞은 행동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피고는 Air Pirates Funnies라는 제목의 만화잡지를 발행한 이들로써, 원고측에 의하여 만들어진 만화 안의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들의 만화에 베낌으로서 디즈니사가 갖는 만화의 저작권 등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당했습니다.

피고의 만화잡지에 있는 주인공들은 원고만화의 주인공들과 그 모습이 매우 유사했으며, 그 주인공들의 이름도 동일하였습니다. 다만 디즈니사의 만화는 위 만화 주인공들의 순진한 웃음거리에서의 이미지를 심으려는 것이었지만, 피고는 이미 알려진 예를 들면 미키 마우스의 명랑한 얼굴, 환한 미소 및 해피 엔딩으로 연상되는 디즈니의 만화 주인공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의미를 갖는 비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데, 위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은 자유분방한 사고를 갖고 있으며, 난잡하게 생활하고 약물을 복용하는 반문화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3. 1심의 판단

위 사건에서 피고는 자신이 디즈니의 만화를 패러디한 것이고, 따라서 미국 저작권법상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하여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1심인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공정사용 항변을 배척하고 피고들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였습니다.

 

4. 2심의 판단

“피고들은 자신들의 복제행위가 침해를 구성할만큼 실질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대신에 디즈니의 만화를 의도적으로 패러디한 것이기 때문에 공정사용항변에 따라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의 그대로 베낀 경우가 아닐 때 법원들은 패러디한 자가 풍자의 대상을 회상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데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원작을 도용하였는지 여부를 물어봄으로써 복제의 실질성을 분석해왔다... 여기서 회화적인 이미지를 베낀 것은 가능하면 똑같게 디즈니의 작업을 따라 한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들은 처음 보았을 때 원작인 것처럼 보이고 자세히 조사해 보면 매우 다른 것임을 발견할 때 패러디의 유머스런 효과를 가장 잘 얻을 수 있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필요한 이상으로 베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의 그대로 베낀 행위를 정당화하게 될 이 주장에 대한 짧은 대답은 최선의 패러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대로 베끼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The short answer to this assertion, which would also justify substantially verbatim copying, is that when persons are copying a copyrighted work, the constraints of the existing precedent do not permit them take as much of a component part as they need to make the "best parody.")

최선의 패러디를 만들려는 희망은 저작권자가 가지는 창작적 표현에 대한 권리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패러디스트에게 원작을 떠올리는 데 필요한 것을 주는 것으로 그 균형을 맞출 수 있고 특별히 정확하게 베낄 필요가 없는 이 사건에서 그 기준은 초과되었다. 이미지 전체를 베낌으로서 피고들은 독자들에게 풍자되는 특별한 특성과 패러디되는 작품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베꼈다. 공정사용의 다른 요소들은 그 자체로 공정사용항변을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 법원과 다른 법원은 지나친 복제는 공정사용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전통적인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피고가 베낀 정도가 허용되는 수준을 넘기 때문에 저작권의 침해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은 정당하다.“

 

5. 결론

우리나라 저작권법과 미국 저작권법은 그 체계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법상 책임의 일반적 제한 사유로 “공정이용(fair use)"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 저작권법에는 개별적인 제한 사유(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등)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저작권법에 따르는 경우에도 만약 제3자가 원저작자가 만든 만화 캐릭터를 임의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저작재산권(2차적저작물작성권) 침해가 성립할 뿐만 아니라 저작인격권(동일성유지권) 침해 또한 성립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피고측 반론인 패러디에 관해, 우리 저작권법상 패러디를 인정해 면책을 인정한 판례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계에서 패러디에 관한 논의가 이미 상당히 존재하고, 현실적으로 패러디라는 것이 문화계에서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향후 법적으로도 문제될 여지가 많다고 보이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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