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행위의 해석과 소위 예문해석>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다36231 토지수용등 

 

 

사실관계:
을(서울특별시)은 적법한 보상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년 동안 갑 소유의 토지를 상수도용지로 점유하여 사용해왔다. 갑은 을을 상대로 토지를 을이 수용해주거나 토지사용료를 달라고 진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 도중 을은 갑에게 토지를 자신에게 팔라고 제의하였고, 이에 갑과 을의 담당공무원 A는 1995. 11월 토지대금을 87,112,500원으로, 그 중 75,750,000원은 계약일에, 나머지는 대금은 1996년도 예산에 편성하여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A는 미리 작성해 둔 매매계약서를 가져와 갑에게 서명, 날인하라고 요구하였고, 갑은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채 서명날인을 하였는데, 매매계약서는 을이 일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양식화된 문서로서 내용 중에는 “갑은 계약이 성립되면 계약일 이전의 토지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을에게 주장하지 못한다”는 부동문자(不動文字)로 인쇄된 조항도 들어 있었다.
갑은 매매계약을 마치면서 A에게 토지의 기존사용료도 1996년 예산에 편성하여 지급하라고 요구하였고, A는 최근 5년간의 사용료는 보상받을 수 있는데, 자신이 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니 다른 부서에 문의하라고 하였으며, 당시 법원에서 소송 중이던 이 사건의 취하 여부에 관하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갑은 을로부터 토지사용료를 지급받지 못하자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서 을에 대하여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였고, 이에 대하여 을은 매매계약상 갑이 기존사용료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기로 하였으니 이를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판결요지:

[처분문서의 내용이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 처분문서의 기재 내용이 부동문자로 인쇄되어 있다면 인쇄된 예문에 지나지 아니하여 그 기재를 합의의 내용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처분문서라 하여 바로 당사자의 합의의 내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하여 그 계약 내용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이 예문에 불과한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① 매매계약 당시 토지대금에 관한 협의만 있었던 점, ② 갑이 A에게 사용료의 지급을 요구했던 점, ③ 매매계약을 체결한 A가 사용료는 다른 부서로 가서 요구하라고 말했던 점, ④ A가 을에게 소송의 취하를 권유한 바 없는 점, ⑤ 매매계약서 중 권리포기 조항은 을이 토지를 구입할 때 일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양식화된 것인 점 등의 구체적인 사정들을 고려하면, 매매계약 당시 갑, 을 사이에는 기존의 사용료에 대한 권리(부당이득반환청구권)를 포기하기로 한 의사의 합치는 없었다고 판단되고, 따라서 매매계약서 상의 권리포기에 관한 문구의 기재는 단순히 예문(例文)에 불과하고, 따라서 갑은 을에게 토지의 기존사용료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동시사망과 대습상속>

 

대법원 2001.3.9.선고 99다13157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사건

 

 

사실관계:

A는 B와 결혼하여 자녀 C, D을 두었다. C는 을(A, B의 사위)과 결혼하여 자녀 C1, C2를 두었고, D는 F와 결혼하여 자녀 D1를 두었다.
이 가족들은 괌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는데, 을은 사정상 나중에 여행에 합류하기로 하였고, 이에 나머지 가족들 모두(A, B, C, D, F, C1, C2, D1)는 한 비행기로 괌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이 비행기가 괌에서 추락을 하여 가족 전원이 사망하였다.
그 후 을이 A의 부동산에 대하여 대습상속인임을 이유로 상속등기를 신청하여, 을 명의의 등기가 마쳐졌다. 그러자 A의 형제자매들인 갑1, 갑2, 갑3은 (1) 동시사망의 경우에는 대습상속이 일어나지 않고, (2) 추정상속인 전원이 사망한 경우에는 대습상속이 아니라 본위상속이 이루어지며, (3) 피대습자의 배우자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들을 배제하고 단독상속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들을 하면서 을 명의로 이루어진 상속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판결요지:

[대습상속과 동시사망 추정제도의 취지] 원래 대습상속제도는 대습자의 상속에 대한 기대를 보호함으로써 공평을 꾀하고 생존 배우자의 생계를 보장하여 주려는 것이고, 또한 동시사망 추정규정도 자연과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동시사망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나 사망의 선후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다루는 것이 결과에 있어 가장 공평하고 합리적이라는 데에 그 입법 취지가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피대습자, C)의 배우자(대습자, 을)는 피대습자(C)가 상속개시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대습상속을 하고, 피대습자(C)가 상속개시 후에 사망한 경우에는 피대습자를 거쳐 피상속인(A)의 재산을 본위상속을 하므로 두 경우 모두 상속을 하는데, 만일 피대습자가 피상속인의 사망, 즉 상속개시와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에만 그 직계비속 또는 배우자가 본위상속과 대습상속의 어느 쪽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동시사망 추정 이외의 경우에 비하여 현저히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것이라 할 것이고, 이는 앞서 본 대습상속제도 및 동시사망 추정규정의 입법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민법 제1001조의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 상속개시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 상속개시와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합목적적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해설

민법에는 대습상속의 요건으로 '상속인이 상속개시 전에 사망하여야 한다'고만 규정되어 있으므로 ‘상속인와 피상속인이 동시에 사망한 경우’에는 대습상속이 발생하는가가 민법상 규정되어 있지 않다. 대법원은 동시사망의 경우에 대습상속이 되지 않는다는 보면 위와 같이 형평에 어긋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하여 갑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대법원이 법률해석을 통해 법률의 흠결이 보충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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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만화 6컷 중 하단의 2컷인 "원고, 피고의 주장" 부분(통상 5컷에 등장하는 사람이 원고, 6컷에 등장하는 사람이 피고)은 사건의 쟁점을 부각시키고 이에 상반된 주장을 대조시킴으로써 판례의 쟁점을 이해하기 쉽게 하고자 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즉, 만화에서의 원고와 피고의 주장은 실제 소송에서의 원고와 피고의 주장인 경우도 있지만, 하급심 판례의 내용이거나 학설의 내용인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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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에 걸쳐 "만화로 배우는 민법 판례" 중 일부를 출판사측의 양해를 얻어 공개합니다.

그럼 어려운 민법 판례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

 

 

형사절차의개략적이해.pdf

 

 

 

"만화로 배우는 형사소송법 판례 120"의 추록격입니다.

 

 

 

김계환 변호사와 저는 형사소송절차에 기본적 소양이 있는 분들을 생각하고 글을 썼는데, 

 

절차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더 쉬운, 전체적인 Guide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형사소송절차를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책에 나오는 사람들(판사, 검사, 변호사)를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그야말로 자유롭게 퍼다 나르셔도 됩니다.

 

마음 같아서는 기존에 책을 사신 분들에게 모두 메일로 보내드리고 싶네요. ^^;

 

 

 

 

감사합니다. 

 

 

 

 

 

형사절차의개략적이해.pdf
0.75MB

 

 

 

 

 

 

책이 나왔습니다.

 

만들 때는 힘들고, 만들고 나면 주로 썰렁한 점, 흠집만 보이는 괴로운 작업이 책 만들기군요.

 

 

저는 주로 그림만 그리고, 글은 연수원 동기인 김계환 변호사가 썼습니다.

 

상대적으로 판례 내용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절차법 공부하기에는 약간의 장점이 있는 책 같습니다.

 

 

앞으로 다른 법 판례 만화책도 차차 그려 나갈 예정입니다. ^^

 

 

 

 

 

 

  

<검찰송치전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대법원 1994. 8. 9. 선고 94도1228 판결

 

1. 사건 개요

갑은 A에 대한 강간치사죄와 사체손괴죄로 기소되었다.

갑은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하였다가, 법정에서는 부인하였는데, 경찰에서는 고문과 자백하면 집행유예로 내보내 주겠다는 회유에 속아 자백하였고, 검찰에서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거짓진술을 되풀이 하였으며, 특히 경찰에서 구속수사 중 검사가 검찰청으로 불러 갑에 대하여 자백하는 취지의 신문조서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는 위법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2. 판결요지

검찰에 송치되기 전에 구속피의자로부터 받은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는 극히 이례에 속하는 것으로, ⓐ그와 같은 상태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내용만 부인하면 증거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상의 자백 등을 부당하게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했어야 할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 한 송치 후에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와 마찬가지로 취급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위 사안의 경우 자백의 임의성을 인정하여,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확정 됨)

 

3. 해설

형소법은 전문법칙의 예외와 관련하여 ‘검사’가 작성하는 피의자신문조서와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구별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안과 같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에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관한 형소법 제312조 제1항과 제2항을 적용하여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차이를 둔 것은 준사법기관이면서도 객관의무를 가지고 있는 검사의 지위를 고려하여 신용성을 인정한 것이지 송치 후에 작성된 때문은 아니라는 점에서,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위 판결은 위와 같은 경우는 수사관행상 극히 예외적이라는 점과 ⓐ와 같은 악용가능성이 있는 점에 근거하여,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제312조 제3항)에 준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송조건의 결여와 수사의 필요성>

 

대법원 1995. 2. 24. 선고 94도252 판결

 

1. 사건개요

검사는 세무서장의 고발이 없는 상태에서 갑에 대한 조세법처벌법위반 혐의에 대하여 수사를 하여 증거를 확보한 뒤 세무서장의 고발을 받아 갑을 기소하였고, 1심 및 항소심 법원은 고발이 있기 전에 수집된 갑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진술조서 등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였다.

이에 갑은 세무서장의 고발이 있기 전의 수사는 위법하므로, 위 각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상고.

 

2. 판결 요지

친고죄나 세무공무원 등의 고발이 있어야 논할 수 있는 죄에 있어서 고소 또는 고발은 이른바 소추조건에 불과하고, 당해 범죄의 성립 요건이나 수사의 조건은 아니므로, 위와 같은 범죄에 관하여 고소나 고발이 있기 전에 수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수사가 장차 고소나 고발이 있을 가능성이 없는 상태 하에서 행해졌다는 등의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고소나 고발이 있기 전에 수사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수사가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3. 해설

수사는 공소제기의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공소제기의 유효요건인 소송조건(특히, 친고죄에 있어 고소, 조세법처벌법상 세무서장의 고발)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는 수사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하여 학설은 친고죄의 고소나 세무서장의 고발이 없는 경우에도 수사가 허용된다는 견해(전면허용설)와 이를 부정하는 견해(전면부정설), 고소가 없는 경우에도 수사는 허용되지만 고소나 고발의 가능성이 없는 때에는 수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제한적 허용설 또는 원칙적 허용설) 등이 대립되고 있다.

위 판례는 제한적 허용설의 입장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고소나 고발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란, 고소기간이 도과한 경우나 고소권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백히 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소송조건의 결여로 인하여 공소제기의 가능성이 없는 때, 예컨대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음이 명백한 경우, 면소판결의 사유인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사면이 있은 경우, 범죄 후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된 경우에도 피의사건을 수사할 수 없다.

 

  

 

 

 

  

<유죄판결에 명시할 이유>

 

대법원 2004. 6. 11. 선고 2004도2018 판결

 

1. 사건 개요

갑은 피해자 A에 대한 성폭법위반(특수강간 등)죄로 기소되었다. 갑은 재판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자수하였으므로, 선처를 바란다고 진술하였으나, 1심 및 항소심은 자수감경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도 않았다.

이에 갑은 자수감경주장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며 상고.

 

2. 판결요지

피고인이 자수하였다 하더라도 자수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이 임의로 형을 감경할 수 있음에 불과한 것으로서 원심이 자수감경을 하지 아니하였다거나 자수감경 주장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3. 해설

유죄판결에는 판결이유에 범죄될 사실, 증거의 요지와 법령의 적용을 명시하여야 할 뿐 아니라, 소송관계인의 ①법률상 범죄의 성립을 조각하는 이유 또는 ②형의 가중, 감면의 이유되는 사실의 진술이 있는 때에는 이에 대한 판단을 명시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323조)

이때 ①에는 구성요건해당성조각사유를 포함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범죄의 부인에 불과하므로 위법성조각사유와 책임조각사유만을 의미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판례는 예컨대,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및 동행사죄로 공소제기된 경우 등기가 실체적 권리 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는 주장은 공소사실에 대한 적극부인에 해당할 뿐, 법률상 범죄의 성립을 조각하는 사유에 관한 주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대법원 1990. 9. 28. 선고 90도427 판결)

②와 관련하여서는 필요적 가중ㆍ감면사유(누범, 심신미약, 농아자, 중지미수, 위증죄 및 무고죄의 자수ㆍ자백 등)가 이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으나, 임의적 감면사유(장애미수, 불능미수, 과잉방위, 과잉긴급피난, 과잉자구행위, 자수ㆍ자복 등)의 경우에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판례는 자수는 형의 필요적 감면사유가 아니므로 유죄판결에 명시할 이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임의적 감면사유는 ②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학설상으로는 당사자의 주장을 신중히 고려하여 판결의 객관적 공정을 확보한다는 취지에 비추어 볼 때에는 임의적 가중ㆍ감면의 경우도 다를 바 없으므로, ②에 포함하자는 견해(이재상, 597면)도 유력하다.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의 의미>

 

대법원 1991. 12. 7. 선고 91모79결정

 

1. 사건 개요

갑은 항소심에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으면서, 공판기일에 3회나 불출석하였다가, 관련 공동피고인들의 구속기간 만료(12. 15.)가 거의 다 된 1991. 11. 22.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이미 수사기관에서 조사되어 1심에서 증언까지 마친 A와 해외출장 중인 담당 수사검사를 증인으로 신청하였다.

재판부가 증인신청을 기각하자 갑은 불공정한 재판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재판부의 법관 전원에 대하여 기피신청을 하였고, 항소심은 소송지연만을 목적으로 한 신청임이 분명하다며 기피신청을 각하하였다.

이에 갑은 재항고.

 

2. 판결요지

(1) 형사소송법 제18조 제1항 제2호의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라 함은 당사자가 불공평한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만한 주관적 사정이 있는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상 불공평한 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를 말하는 것이므로, 재판부가 당사자의 증거신청을 채택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재판의 공평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유가 있다 할 수 없다.

(2) 소송지연만을 목적으로 한 기피신청은 그 신청 자체가 부적법한 것이므로 그러한 신청에 대하여는 기피당한 법관에 의하여 구성된 재판부가 스스로 이를 각하할 수 있다.

 

3. 해설

기피신청의 원인은 제척의 원인이 있는 때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이다.

사안은 법관이 증거신청을 채택하지 않은 경우도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가가 문제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증거채택 결정은 기속재량의 성질을 가지므로, 당사자의 증거신청권에 대한 자의적인 침해가 인정될 경우에는 기피사유에 해당한다는 견해(기속재량설)도 있으나, 위 판결은 증거신청에 대하여 채택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기피신청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고, 이는 증거의 채택여부는 법원의 자유재량이라는 점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다만, 위 사안의 경우에는 갑이 소송지연만을 위해 불필요한 증인에 대하여 증인신청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기속재량설에 따르더라도 기피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합범에 있어서 자백의 보강정도>

 

대법원 1996. 2. 13. 선고 95도1794판결

 

1. 사건 개요

갑은 1994. 6. 중순(①회), 같은 해 7. 중순(②회), 같은 해 10. 중순(③회), 1995. 1. 17.(④회)에 각 메스암페타민을 투약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갑은 범행을 모두 자백하였고, 증거로는 1995. 1. 18.에 채취한 갑의 소변에서 메스암페타민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감정회보서의 기재와 갑의 검거 당시 압수된 메스암페타민 이 있다.

항소심은 ① 내지 ③의 범행에 대하여는 보강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고(④는 유죄), 이에 검사가 상고.

 

2. 판결요지

소변검사 결과는 1995. 1. 17.자 투약행위로 인한 것일 뿐 그 이전의 4회에 걸친 투약행위와는 무관하고, 압수된 약물도 이전의 투약행위에 사용되고 남은 것이 아니므로, 위 소변검사 결과와 압수된 약물은 결국 피고인이 투약 습성이 있다는 점에 관한 정황증거에 불과하다 할 것인바, 투약 습성에 관한 정황 증거만으로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인 각 투약행위가 있었다는 점에 관한 보강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3. 해설

보강증거는 개별 범죄사건을 단위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경합범은 수죄이므로, 각각의 범죄에 대하여 보강증거가 필요하다. 다만, 각각의 범죄에 대한 보강증거가 서로 다를 것까지 요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증거가 각각의 범죄와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면, 공통된 보강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안의 경우 소변검사결과 메스암페타민 양성반응이 나온 감정회보와 압수된 메스암페타민의 존재는 전체 투약행위에 대한 보강증거로서 충분한가가 문제된다.

우선, 체내에 있던 메스암페타민이 소변에 의해 검출되는 기간(비교적 단기임)을 고려하면, 소변채취시점보다 수개월 이전에 행한 투약사실(① 내지 ③)에 대하여는 위 감정회보가 보강증거로서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압수된 메스암페타민의 경우도 투약에 사용된 주사기 등과 달리 투약사실과는 직접적인 관련성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압수시점보다 훨씬 이전의 투약행위에 대하여는 보강증거가 되지 못한다.

 

 

 

 

 

 

<증인신문에 있어 반대신문권 보장과 증명력>

 

대법원 2001. 9. 14. 선고 2001도1550 판결

 

1. 사건 개요

교도관 갑은 재소자인 A가 맡긴 돈을 보관하던 중 횡령하고, A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A는 갑에 대한 1심 공판기일에서 갑에게 돈을 맡기고 사례비를 준 사실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이어 검찰에서의 A의 진술을 탄핵하려는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대하여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A의 1심 진술 및 A에 대한 검사작성 진술조서 등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여, 유죄를 선고하였고, 이에 갑이 상고.

 

2. 판결요지

(1) 검사가 피의자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에 대하여 그 원진술자가 공판기일에서 그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면 그 조서는 증거능력이 있는 것이고, 원진술자가 공판기일에서 그 조서의 내용과 다른 진술을 하거나 변호인 또는 피고인의 반대신문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곧 증거능력 자체를 부정할 사유가 되지는 아니한다.

(2) 검사 작성의 진술조서에 대하여 원진술자가 공판기일에서 그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진술조서상의 진술내용을 탄핵하려는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대하여 묵비한 것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책임 있는 사유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경우, 그 진술기재는 반대신문에 의한 증명력의 탄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이므로 그 신빙성을 선뜻 인정하기 어렵다.(위 사안에서 A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3. 해설

사안과 같이 원진술자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측의 반대신문에 묵비함으로써 반대신문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될 수 없었던 경우 그의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 전문증거에 대한 반대신문권은 형식적ㆍ절차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ㆍ효과적으로 보장되어야 함을 이유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견해와 원진술자의 증언의 증거능력이 부정되지 않는 이상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은 인정된다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위 판례는 후자인 긍정설을 취하면서도, 반대신문권 보장의 취지와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증인이 반대신문에 묵비하여 진술내용의 탄핵이 불가능하였다면 그 증거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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